반목하는 인간과 화해를 이루시는 하느님
성당 고해실을 들어가면 칸막이가 있습니다. 들어가기 전부터 떨리고 부담스러운 고해실인데 왜 더 무겁고 답답하게 고정된 칸막이가 있을까? 그 이유에 대해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못 생겼으면 용서가 안 되기 때문에 칸막이를 설치해 놓은 것이다.”라고요.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우리 사회의 병적인 현상을 지적하는 이야기 같습니다. 꼭 외모지상주의를 빗대어하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외형적인 모습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살아가는지, 감정에 휩싸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화해하는 삶을 스스로 거부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 마음속 수많은 장애들이 용서하고 화해를 이루며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시지만 우리는 용서를 하지 못해서 힘들어하고, 스스로 지난 과거와 화해하지 못해서 끊임없이 상처와 갈등을 빚어내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지난 모습을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다.”(마태 18,19) 자녀들이 청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들어주시는 하느님께서 특별히 두 사람, 그러니까 여럿이 마음을 모아 청하는 공동의 기도는 더욱 잘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공동 기도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예수님께 베드로 사도가 질문을 합니다.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합니까?” 용서의 한계를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용서에는 한계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의 한없는 용서를 입고 사는 우리는 이미 받은 용서에 감사드리며 한없이 용서하고 화해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살아갈 수 있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듯 교회 공동체가 살아가려면 서로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 하고, 서로 한없이 용서해야 합니다. 마음을 모아 드리는 기도의 힘으로 교회가 살고, 우리들도 용서를 하며 용서를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형제애를 실천하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하고, 교회 공동체를 통해 선하고 자비로운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모아 기도하며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지는 못해도 다시 뉘우치기도 하고 다시 애써 노력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민족이면서도 남북문제를 만나게 되면 감정에 휩싸이고 분노하곤 합니다. 대화로 풀어가기 보다는 묵은 감정으로 대하고,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흑백논리가 우선이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전쟁의 아픔이 크고, 오랜 세월 반목하며 지내왔던 감정의 골이 깊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들이 원해서 빚어졌던 전쟁과 갈등이 아니었습니다. 물려받고 싶지도 않고 물려주고 싶지도 않은 적대관계입니다. 갈등과 대결은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상처만을 남겨놓게 됩니다.
갈라진 우리 민족이 묵은 감정, 선입견, 섣부른 판단을 내려놓고 마음을 모아 서로 같은 점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서로 용서해주며 화해를 이루면서 마음속 아팠던 상처들을 고쳐주고 씻어주면 좋겠습니다. 그 일을 우리 신앙인들이 먼저 나서서 이루어가야 하겠습니다. 숱한 감정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모습이지만,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힘과 지혜로 세상의 질서를 이겨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다름’을 찾기보다 ‘같음’을 찾으며 서로 마음을 모아 일치를 이루는 삶, 서로 용서하고 화해를 이루며 치유하는 삶. 그 거룩한 부활의 삶이 우리 안에서 솟아나기를 기도합시다.
태화동 본당 안영배 요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