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리아
마리아는 우리의 희망이요 우리의 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마리아를 우리 구원의 “길잡이 역할을 하시도록”(교회헌장 62항 참조) 각별히 배려하셨습니다. 특히 마리아를 주님의 ‘가난한 이’로 선택하시어 ‘가난한 이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도록 부르셨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는 마리아를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리아와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찬송하며, 마리아에게 그러하셨듯이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비천함을 굽어보시고 우리에게도 큰일을 하실 수 있도록 주님의 자비와 권능에 우리 자신을 맡깁시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9)
마리아는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뛴다고 노래하면서 모든 육체적인 상태와 물질적인 차원을 뛰어 넘습니다. 하느님을 향하는 데 방해되는 요소 자체를 멀리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을 자기 인생의 첫 자리에 두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신명 6,5) 그분을 사랑하며 찬송합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궁핍과 가난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가난한 자신에게 친히 눈길을 주시어 분에 넘치는 놀라운 “큰일”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큰일”이란 비천하기 그지없는 자신 안으로 하느님께서 친히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으로 가득 채워진 마리아의 가난한 영혼과 가난한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하고 모든 세대가 그를 행복하다고 부러워합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마태 5,3 참조)을 이미 누리고 있습니다.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0-53)
마리아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을 “비천함”에서 들어 높여주신 하느님의 자비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치고 있다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은 흩으십니다. “비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은 끝까지 챙겨 주시지만 백성은 돌보지 않고 자기 실속만 챙기는 “통치자들”,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부유한 자들”은 내치십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여기서 대조되는 삶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하느님을 올바른 두려움으로 섬기지 않고 오로지 자기에게만 몰두하는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의 운명은 어떠한지, 반대로 자신들의 삶이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에 달려 있음을 알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 곧 “비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의 구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베풀어지는지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노래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도 회개하여 “하느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으로 이 세상에서부터 ‘마음으로 가난한 이들의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마리아는 “비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 곧 ‘가난한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이런 자비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세대대로 이어지고 미치리라 굳게 믿으며 자기 노래를 끝맺고 있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루카 1,54-56)
우리는 지금 육체적으로는 편리하고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누렸던 ‘가난한 이의 행복’이 우리에게는 멀게만 느껴집니다. 마리아가 믿고 고백하고 체험했던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이 멀리 계시는 것만 같습니다. 교황님께서도 지난 7월 8일 아프리카 불법이주자 수용소를 찾으셨을 때 같은 우려의 말씀을 표명하시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을 질책하신 바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잊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 우리의 풍족한 문화가 우리를 다른 이들의 울음에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마리아의 노래를 함께 부르도록 초대받은 형제자매 여러분, 마리아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이 되도록 마리아와 같은 마음으로, 마리아와 같은 믿음으로 기도하고 노래합시다.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의 비천함을 굽어보시어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행복하다고 여기게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그런 믿음을 가져 봅시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마리아처럼 주님의 ‘가난한 이’가 되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2013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천주교 안동교구장 권 혁 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