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라자로
교우여러분, 찬미예수님!
벌써 가을도 깊어갑니다. 이 결실의 계절에 우리의 신앙도 잘 익어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복음은 부자와 라자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자는 가난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날마다 호의호식하며 즐겁게 살았지만 죽은 후에 지옥에서 고통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라자로는 가난뱅이요 종기투성이로 개들이 핥기까지 하는 가련한 신세로 살다 죽었지만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의 품 곧 낙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오늘 복음은 사람들이 이 비유의 부자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당시 유다인의 통념으로는 부자는 하느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자’라는 사실 자체 때문에 저 세상에서 운명이 역전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비유 속에 나오는 부자가 특별히 악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고 이기적으로 이웃과는 담을 치고 살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차이는 당연한 것이고, 내가 나쁜 짓 한 것도 아니고 능력이 있어서 잘 사는데 무슨 문제냐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의 가르침은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아야 할 하느님 백성임을 깨우쳐 줍니다. 오늘 1독서의 아모스 예언자는 흥청거리는 지도자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2독서의 디모테오에게 보낸 훈시에서도 안수를 통해 하느님의 영을 받은 교직자와 지도자들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권력과 재력이 많고 지도층에 속한 사람일수록 가난한 이웃을 살피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갈 책임이 크다는 것을 깊이 느껴야 할 것입니다.
부와 가난은 하느님의 은총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부는 하느님의 축복이요, 가난이 하느님의 벌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난도 칭찬의 대상이 되거나 좋은 것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입니다. 세상의 불공평은 ‘나눔과 섬김’이라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통해서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상태는 일시적인 것이기에 현재의 상태에 안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내일을 위한 회개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부자는 가난한 라자로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재물을 가졌다는 것은 나눌 것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재물은 좋은 것인데 재물을 행복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우리의 이기심이 비극의 발단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세계는 산업혁명 이래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인해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소비가 위축되면 경기가 침체되니 대량으로 소비해야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하니 언제까지 소비만 해야 하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재물을 강제로 공평하게 나누어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고 했으나 결과는 평등한 가난만 남았습니다.
부자는 라자로를 보내어 자기 형제들에게 같은 불행을 당하지 않게 경고해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모세와 예언자들의 가르침만으로 충분하다고 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미 모세와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알려 주었으니 그 말씀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긴가민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이웃사랑을 실천해서 서로 나누고 섬기면 됩니다. 나 중심의 대문을 열고 밖을 보면 대문 밖의 수많은 라자로가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회개는 깨달음이요, 은총입니다. 이 깨달음은 자기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 껍질을 벗고 자기를 깨칠 때 내리는 은총입니다. 그곳에는 새로운 길,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삶이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는 새로운 인생관, 새로운 세계관 곧 새로운 영성을 갖습니다. 회개는 부활의 삶입니다. 영원의 삶을 미리 앞당겨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자는 이미 구원을 사는 사람입니다.
가톨릭상지대학교 정일 가브리엘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