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저는 초등학생 시절이 한참 지날 때까지 책상이 없었습니다. 그냥 앉은뱅이 밥상에서 숙제를 하거나 공부를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 집에 한번 씩 놀러 가면 의자가 달린 책상이 있고, 그 위에 책이 나란히 꽂혀 있는 것을 매우 부러웠습니다. 스위치를 켜면 형광등에 불이 켜지는 것이, 책상만 있으면 공부를 잘할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책상을 사달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대뜸, “공부도 안하는 녀석이 책상은 사서 뭐하게? 공부를 해야 책상을 사주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더 이상 아버지께 조를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말씀이 맞았기 때문입니다. 책상을 얻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제가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책상의 필요성을 부모님이 제일 먼저 느꼈을 것입니다. 이후에 공부를 안 하긴 마찬가지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책상은 사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루카 17,5)
이 간청은 단순한 제자들의 간청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기도이며 바램입니다. 믿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니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는 자주 하느님께 이러한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제자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가 아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라고 청합니다. 무엇을 더한다는 것은 이미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내가 가진 것에서 더 달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간청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리고 그 작은 믿음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바꾸어 본다면 이렇습니다. “청하기 전에 네가 가진 믿음대로, 네가 작다고 생각하는 그 믿음대로 제대로 올바르게 한 번이라도 실천하면서 청해라.” 믿음을 청하려면 내가 가진 믿음대로 살면서 그것을 청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가진 것조차도 살리지 못하면서 더 큰 것을 바라는 것은 과시나 욕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음대로 살려고 할 때,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고 그때서야 청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비록 내가 가진 믿음이 형편없고 작은 믿음이라도 실천하려고 애를 써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공부도 안하는 사람이 책상만 사달라고 하면 아무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책상이든, 밥상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부모라도 그런 자식에게는 사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믿음을 달라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실천할 때, 내가 알고 있는 신앙의 원칙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할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비록 내가 열심히 믿지도 못한다고, 신앙심이 깊지 못하더라도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작은 믿음을 실천하는 작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믿음을 실천하더라도, “저는 종일 따름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고 겸손하게 고백할 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을 선사하실 것입니다.
“당신께서 듣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까?”(하바 1,2)
억압과 폭력과 시비와 싸움이 난무하고, 하느님을 믿는 일마저 헛되게 보여도 주님께 신뢰하고 기대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현세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하느님께 성실함을 잃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자라고 더해져서 큰 믿음으로 초대되어 하느님을 움직이게 하는 강한 힘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하바 2,3)
군종교구 천주교 하상바오로성당 류한빈 안드레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