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고 떳떳하게!”
기쁘고 떳떳하게! 우리 교구의 사목표어입니다. 교구 사제단에서 우리 교구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며 사명선언문을 작성할 때 역사적 사명이나 세상의 변화와 같은 글로벌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현재 살고 있는 삶을 간결하게 담아내기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 결과 소박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나누고 섬기는 교회상이 만들어졌는데, 우리 교구의 모습을 잘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구자는 사명선언문의 앞뒤 내용은 ‘기쁘고 떳떳하게!’라는 사목표어로 다시 잘 압축되었습니다. 신앙을 받아들이면 기쁨이 생기고, 신앙을 살아가면 활력이 넘친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겠다는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대림 제3주일 독서는 ‘기뻐하여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해방시키실 날이 다가왔으니 기뻐하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네 개의 대림초 가운데 이제 마지막 남은 한 자루의 초에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구세주의 성탄을 알리는 종소리가 벌써 들리는 듯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는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공적인 활동에 대한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의혹에 사로잡혀 고민하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물어보게 합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3)
세례자 요한은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았던 사람이고,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러 오시는 예수님에게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이분이 그분이신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 것은 예수님의 활동이 자신의 기대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 당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의의 심판자, 세상의 질서를 바꾸는 강력한 통치자로 메시아를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은 사람의 기대를 채워주는 메시아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메시아라고 일깨워주십니다. 눈먼 이들이 보고 귀먹은 이들이 듣게 된다는 것을 메시아의 표징으로 제시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가 바로 정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정의는 다른 사람을 단죄하는 것으로 실현될 수 없고, 올바른 질서는 강제력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의와 무질서는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정의를 부르짖고 질서를 세우려는 세력은 사실상 불의와 무질서에 사로잡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정의와 질서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에게 있다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남을 변화시킬 힘이 자기에게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기꺼이 하느님께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자선주일입니다. 우리 교구 신자들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소박하게 사는 것에 마음을 열고 어려운 이웃에게 다가가 가진 것을 나누고 가난한 이들을 섬김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일구는 주님의 제자, 하느님 사랑을 실현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주님은 우리가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자신의 기대, 자신의 노력에 의지하지 말고 하느님의 계획,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맡기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자신의 한계와 나약함을 깨달을 수 있게 항상 기도합시다.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겸손한 마음과 나누고 섬기는 삶 안에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기쁘고 떳떳하게!
정상동본당 권용오 마티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