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탄생 예고
대림시기 마지막 주일인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천사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식이지만, 그 대상은 마리아가 아니라 마리아의 남편 요셉입니다. 천사는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아기가 태어나면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주라고 말합니다.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던 마리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는 마리아와 요셉에게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 오늘도 선포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대림시기에 기다림의 의미를 세 가지로 부여하고 있는데, 구세주의 탄생에 대한 기다림, 종말에 재림하실 그리스도 왕에 대한 기다림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한 기다림이 그것입니다. 해마다 이 맘때 찬바람이 부는 거리를 설렘으로 가득 채우는 크리스마스의 기쁨은 성탄시기가 지나면서 화려한 장식과 함께 사라지고 더불어 아기 예수님도 잊혀지고 맙니다. 다가올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희망은 연중시기 마지막에 전례주년이 끝남을 알리며 잠시 나타났다가는 사라져버립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예수님이 우리에게서 잊혀지고 마는 것은 우리 각자의 삶 속에 예수님이 자리를 못 잡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대림시기에 듣게 되는 하느님 말씀이 오늘 우리 각자에게도 주님을 삶의 한 가운데로 받아들이도록 동의를 구한다는 뜻에서 우리에게도 탄생이 예고된다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아하즈 왕에게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다.”(이사 7,14)고 선포할 때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다윗 왕조가 흔들리던 시기였습니다. 왕조의 위기를 다양한 인간적인 한계상황의 일부로 간주한다면 이사야와 아하즈의 대화는 말씀과 우리의 관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하즈는 왕권을 유지하려는 집착 때문에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느라 하느님께 의탁하라는 예언자의 권고를 거부합니다. 주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종교적인 이유를 표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세속에 안주하려는 우리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다급할 때 하느님을 찾는 듯하지만, 원하는 것에 대한 집착 때문에 자기고집을 버리지 못합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아하즈에게 이사야의 메시지는 축복이 아니라 경고가 됩니다. 주님의 탄생예고가 경고가 아니라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도 마리아와 요셉처럼 응답할 수 있는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이 피조물 안에 머물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시지만, 먼저 우리의 동의를 구하시는 것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동의는 인간의 몸을 하느님의 몸으로 변화시켰고, 요셉의 동의는 노동자의 삶을 구원의 현장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우리도 마음 안에 예수님이 탄생하기를 동의한다면 우리의 인생여정은 구원의 여정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와 요셉이 탄생예고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것처럼 우리도 본성적으로는 응답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이끌어주지 않는다면, 천사가 안내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해할 수도 없고 수용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이 설계한 삶을 버리고 하느님의 계획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미래의 불확실성에 기꺼이 투신할 수 있도록 겸손과 믿음의 은총을 간구합시다. 대림시기 동안 나약한 인간 본성의 죄스러움과 현실의 한계를 성찰하며 우리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왔습니다. 이제 아기의 모습으로 탄생하실 주님과 함께 우리의 신앙생활이 성장할 수 있도록 주님의 여정에 동행하도록 합시다.
정상동본당 권용오 마티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