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요한 1,10)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이미 세상에 오셨고 오늘도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런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9-11)
“물질주의에 빠진 정신 상태로 인해 성탄을 기념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자꾸만 혼란스러워지고 있습니다.”(베네딕토 16세, 2007년 12월9일) 너무나 세속적이고 상업적인 성탄 문화로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습니다. 서구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이러한 경향은 위험 수위에 달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성탄문화가 연말연시 분위기와 맞물려 거리의 경건한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물질중심의 우리 문화가 하느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길을 막고 있지는 않는지 염려됩니다. 사람들이 “세상의 빛”(요한 8,12)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될 것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빛을 향하고 있습니다. 빛이 없으면 생명은 성장을 멈추고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빛”(요한 8,12)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비추어 주지 않으시면 우리의 생명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과 함께 살 때만 우리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빛 속에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세상의 빛’이 되어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밝게 비출 수 있게 될 것입니다.(요한 12,46 참조) 절망 중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과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과 인간 구원을 위해 “생명의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구세주’라는 사실이 우리가 세상에 선포해야 할 복음(福音) 내용입니다. 이런 복음의 기쁨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복음의 기쁨은 모든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거기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천사가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전한 그대로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 2,10)>(「복음의 기쁨」 23항) 교황님은 이어서 요한 묵시록을 인용하시면서 “온 백성에게 기쁨이 될 소식”, 곧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땅에 사는 사람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언어권과 백성에게 선포할 영원한 복음”(14,6)이라고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전해야 할 복음의 내용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신 하느님’입니다. 그분은 2000년 전에도 오셨고 지금도 우리에게 새롭게 오시는 우리 구세주 예수님이십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한 말씀을 끝까지 들어보면 우리가 세상에 전해야 할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더욱 뚜렷하게 보일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났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9-12)
이 말씀에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듯이,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은 오늘 우리를 위하여 태어난 “구원자, 주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는 우리를 위한 표징입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비천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자신과 동일시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마태 25,40)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친히 “너희가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마태 25,40)이라고 하셨으니, 바로 이런 사람들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으로 알아보고 받아들여야 할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란 바로 ‘굶주린 이, 목마른 이, 나그네 된 이, 헐벗은 이, 병든 이, 감옥에 갇힌 이’(마태 25,37-39)가 될 것입니다.
“빛의 자녀답게”(에페 5,8)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형제자매 여러분, “구원자, 주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그분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기꺼이 그들과 함께하며 주님을 섬기듯 그들을 기쁘게 섬기는 것입니다. 교황님의 말씀대로 ‘가서, 두려워하지 말고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들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 전해야 할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루카 2,10)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 2,10)
2013년 12월 25일 예수성탄대축일
천주교 안동교구장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