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전례력으로 오늘은 성탄시기의 마지막 주간이면서 성탄추리에 깜박이 전구와 큰 별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축일입니다. 별의 인도로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을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하여 주님공현대축일을 ‘별의 축제일’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별빛을 따라 찾아오자니 자연히 밤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낮에는 별이 보이지 않으니 쉬고, 밤이면 다시 별을 따라서 머나먼 길을 찾아 온 것입니다. 별빛을 따라 길을 나선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빛이 있는 곳을 향하여 나아간다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빛을 향한 발걸음은 늘 희망을 줍니다. 밝은 곳을 향해 힘들고 어려운 발걸음을 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참으로 보람된 일로 다가 올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밤길을 떠난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우리의 시선을 빛을 찾아 나서는 박사들에게로 한번 돌려봅시다. 박사들은 캄캄한 밤이지만 별을 보고 길을 떠납니다. 깜박이는 별빛이지만 그 작은 빛을 따라 길을 떠납니다. 작은 별빛을 따라 나서는 박사들의 용기가 부럽습니다. 박사들의 그 용기에 힘입어 우리도 한번 현실로 돌아가 봅시다. 자녀들의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한번 찾아봅시다. 그들 안에 숨겨진 자그마한 별빛처럼 반짝이는 장점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들이 나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는 존재가 아니라 무거운 짐을 가볍게 지고 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함께 사는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짐이 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할 때 어려운 길을 가지만, 희망을 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쉽고 편한 길을 갑니다.
희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밝은 대낮에 등불을 밝혀들고 거리를 거닐었습니다.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가 정신병자가 아닌가 하고 수군수군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세상 사람들이 밝은 것을 볼 줄 모르고, 남의 장점을 보는 눈이 어두워진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대낮에 등불을 밝혀들고 거리를 거닐었다고 합니다.
오늘 베들레헴을 향해 길을 떠난 박사들의 밤길은 빛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박사들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을 찾아 만나기 위해 어둔 밤에 별을 보고 떠납니다. 그들은 따뜻한 삶의 자리를 버리고 차가운 밤길을 떠납니다. 아브람이 자기 고향을 버리고 길을 떠났듯이 그들도 고향을 떠납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돈이 제공하는 따뜻한 온상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말씀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에게는 말씀의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별이 밝은 대낮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별은 캄캄한 밤일수록 더욱 선명하게 빛납니다. 말씀이 초라한 구유에 사람이 되어 누워 계십니다.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길을 떠나 봅시다. 우리가 갇혀있는 이기심의 따뜻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길을 떠나봅시다.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말고, 과거를 떠나 현재를 살아 봅시다. 과거의 상처들은 과거에 그대로 남겨두고 현재 나의 삶의 자리를 직시합시다. 하느님은 과거의 쓰레기 같은 사건들 안에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때는 하느님이 아니 계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이 아니 계신 것처럼 행동했을 뿐입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이십니다. 임마누엘 하느님은 늘 현재이십니다. 마치 자기 아버지의 든든한 그늘 아래서 착한 일을 해보겠다고 애쓰는 아이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의 아버지라 부릅니다. 임마누엘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임마누엘 하느님은 내가 만든 따뜻한 나만의 보금자리를 떠날 때 비로소 나의 하느님으로 다가 올 것입니다.
의성본당 조종율 베르나르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