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마에 신중하게 십자표시를 하여라.”
40일간의 신앙의 긴 영적 순례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어떤 마음의 다짐을 새롭게 가져보셨습니까? 사순절이 시작되면 많은 분들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어떤 분은 술을 끊어 보겠다, 어떤 분은 담배를 끊어 보겠다, 어떤 분은 집에 일찍 들어오겠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겠다, 매일 십자가의 길을 바치겠다, 화를 덜 내겠다, 잔소리를 덜하겠다, 사치를 하지 않겠다는 등의 결심을 합니다. 무엇이든지 이 시기에 자신의 영적 정화의 시간을 통하여 하느님 대전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봉헌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순 첫 주일에 교회는 늘 예수님의 유혹에 대한 성경 말씀을 들려줍니다. 오늘 복음에도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마태 4,1)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을까?’ 하는 질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사실 인간이 되어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들이 겪는 유혹을 그대로 다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죄에 빠지지는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대 그레고리오 교황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혹은 꼬드김, 즐거움, 동의의 삼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유혹을 받으면 즐거움에 빠지고 동의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육의 죄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정녀의 태중에 강생하신 하느님께서는 죄 없이 세상에 오셔서 내면의 갈등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꼬드김의 유혹은 받으실 수 있지만 죄의 즐거움은 결코 그분의 마음을 흔들 수가 없습니다.”
교황님께서는 특별히 죄의 유혹에 대하여 ‘즐거움’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유혹에는 일시적이나마 인간의 마음을 끄는 즐거움이 함께 동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뱀으로부터 받는 유혹 이야기에서 그 열매를 따먹으면 하느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뱀의 유혹에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창세 3,6)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그 열매를 보자 먹고 싶은 마음의 충동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먹는 즐거움에 빠져버립니다. 유혹은 그렇게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나약한 인간으로서 우리 삶의 유혹에서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처럼 유혹을 이겨나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게쎄마니 동산에서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마르 14,38)고 말씀하셨습니다. 유혹을 이기는 힘은 기도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유혹이 다가오면 기도로 이를 물리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초세기 교회 공동체는 유혹이 다가올 때 특별히 ‘십자성호’를 긋는 기도로 이를 물리치라고 가르쳤습니다. 초세기 교회의 삶이 기록된 사도전승에는 이에 대한 가르침이 들어있습니다.
“유혹을 받으면 항상 네 이마에 신중하게 십자 표시를 하여라…. 적대자가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모상으로 뚜렷이 변화된 너의 마음에서 나오는 성령의 능력을 보게 되면 놀래어 도망치게 될 것이다. 너는 그 자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모세가 빠스카를 위해 희생당한 양의 피를 문지방에 뿌리고 두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예표하신 것인데, 지금 우리 안에 있는 완전한 양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손으로 이마와 눈들에 십자 표시를 할 때에, 우리를 없애 버리려고 유혹하는 그자를 쫓아버리게 된다.”(사도전승,42)
이번 사순시기, 생활 속에서 성호경을 자주 그으면서 다가오는 유혹은 물리치고, 주님과는 더욱더 깊은 일치를 이루는 영적 여정이 되도록 합시다.
휴천동 본당 안상기 미카엘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