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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나는 누구를 어떻게 증언하기에 신명나하는가?

사목국이메일

나는 누구를 어떻게 증언하기에 신명나하는가?

 

오늘은 대림 제3주일로 기뻐하다.’, ‘즐거워하다.’라는 뜻을 지닌 가우다떼’(Gaudate)주일입니다. 같은 의미의 레따레’(Laetare)주일(사순 제4주일)과 함께 장미주일이라 불리고 장미색 제의를 입었고, 입당송에서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으니,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라.”(필립 4,4-5참조), 그리고 화답송에서는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루가 1,46-47) 등에서 기쁨을 주제로 전개되고, 그 동기는 구원’,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기때문이라고 밝힙니다.

기다림이 너무 오래되면 지쳐서 포기하거나, 무엇을 기다리는지 잘 모르게 되거나, 기다리는 마음가짐이 느슨해지기가 쉽습니다. 하여 우리의 기다림으로 주어질 결과에 대해서 미리 조금 보여줌으로, 지쳐 중단하거나 느슨해지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주일입니다. 미리 앞당겨 그 기쁨을 맛보게 함으로 희망으로 기다림을 지속하여 구세주의 탄생을 맘껏 기뻐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갈수록 주인공을 하고 싶어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듭니다. 요한은 자신의 역할, 즉 보조역을 진실하고 성실하며, 겸허하게 수행하여 성탄을 맞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오히려 주인공과 보조역의 구분을 명확하게 지을 수 없도록 합니다.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기쁜 성탄을 맞는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의 사명은 예언적 사명입니다. , 즉 예수를 증언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증언이란 직접적인 인식과 체험 그리고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손으로 만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자기 확신이고 믿음입니다. 결국 증언이란 진실과 거짓, 빛과 어두움, 신앙과 불신 등을 이미 체험했음을 전제로 합니다. 과연 나는 내가 고백하는 신앙에 확신이 있습니까?

요한은 자기에게 온 사람들에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요한 1,20), 엘리야도 아니다. 예언자도 아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서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말의 소리는 그 말의 내용을 전달하고 그 일을 마칠 때 사라집니다. 그래서 그는(말은) 더욱 커져야 하고 나는(소리는) 작아져야 한다며 자기 임무를 마치고 나면 이것으로 나는 기쁨에 넘친다.”라고 하며 사라져 버립니다.(성무일도 대림3주일 둘째 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 참조)

 

우리에게도 요한처럼 진실하고도 성실하며 겸허한 자세가 있어야만 성탄의 신비를 통해 우리 가운데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만나 뵐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토록 거룩한 분을 소개하고 증언할 수 있다는 것은 그분께 영광이기보다 내게 기쁨을 넘어선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모전동 본당 이준건 콜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