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이를 향한 희생과 사랑
손주가 아프면 친정어머니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너 얼마나 힘드니?” 그런데 시어머니는 손주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저 조그만 녀석이 얼마나 고생일까?” 시집간 딸이 늘 안쓰러운 친정어머니의 마음과 내 아들과 자식이 걱정스러운 시어머니의 마음, 이것이 바로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차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너도 자식 시집 장가 보내보면 알게 될거다.”라고 자녀에게 말하는 어머니의 입장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지극한 사랑! 무엇이든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는 것이 사랑의 힘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사랑으로 인해 차별과 서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마음을 넓혀 좀 더 많은 사람, 사랑이 더 필요한 사람, 먼저 감싸주어야 할 사람을 배려해보면 세상이 더 따뜻해지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오늘은 주님 만찬 성목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 전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셨음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주기 위해 성체성사를 제정하셨고 아버지 하느님과 우리를 끊임없이 이어주기 위해 성품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또한 오늘 복음인 요한 복음서에 의하면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고 전합니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신 당신의 말씀 그대로 스승이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모범입니다. 그것도 당신을 모른다고 도망치고 심지어 배신하여 넘겨줄 제자들까지도 품에 안으시는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다른 사람들의 발을 씻어주는 사랑, 심지어 나를 배신하고 배척하는 사람들마저 품어 안으시는 희생, 스스로 낮은 자리로 임하시는 겸손을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아무런 조건없는 사랑,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기꺼이 바칠 수 있는 희생, 아무것도 아닌 나 자신임을 깨닫는 겸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희생, 겸손한 삶에 대한 무수한 가르침을 들으며 살아갑니다. 들은 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실천들이 좀 더 넓은 세상관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좁은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자녀, 내 가족, 특별한 사람,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라는 틀 안에서 벗어날 생각을 해보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랑과 희생이 차별과 장벽을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는 일도 생겨납니다. 내 가족이 겪은 조그만 일에는 엄청나게 분개하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과 억울함 앞에서는 냉정한척 외면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일에도 무관심해집니다. 결국 언젠가는 나에게 돌아올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깨닫지 못하고 오로지 나를 위한 사랑과 희생만 하다가 지쳐버리게 됩니다.
스승이신 주님께서 먼저 자신을 낮추신 겸손, 당신의 몸을 제물로 내어놓으신 희생, 배신자와 원수들까지 품에 안으시는 사랑을 묵상해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우리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나에게 특별한 사람을 넘어서 세상 모든 사람을 품으며 살아가야 하겠고, 소수의 약자들과 소외받는 이웃들의 삶에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오던 가족과 이웃들의 수고와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우리 생각과 마음의 틀을 끊임없이 넘어서야 한다는 예수님의 계명을 기억합시다.
풍양 본당 안영배 요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