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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호산나! 호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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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 호산나!”

 

사순절은 이번 주간으로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지난 주일에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밀알의 교훈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예루살렘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복음내용을 들으면서 이런 저런 장면들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모두들 성문으로 마중을 나갑니다. 고향인 나자렛에서는 출신이 미천하다고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았던 예수님이셨는데. 손에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혹시나 발에 흙이라도 묻을까봐 입고 있던 겉옷은 벗어 땅에 깔아 놓았습니다. 그럴 정도로 예수님에 대한 군중들의 환영은 대단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대접을 받으시면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세주로서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오늘의 분위기는 군중들의 환호 소리에 가득차고 기쁨이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환호는 일순간에 지나가고 모든 것이 죽음과 수난을 향한 비탄에 젖어드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환영하였던 군중은 갑자기 돌변하여 유다인 사제들과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환호하던 나뭇가지는 이제 예수님을 내려치는 채찍으로 변하였습니다. 언제 우리가 예수라는 사람을 환영하고 맞이했냐는 듯이.

이러한 예루살렘의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경우 우리 삶에서 또 자신 안에서 말도 안되는 양면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은 선과 악의 양면성입니다. 예수님을 환영하고 예수님을 들어높였던 군중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모습은 어디가고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다시 소리칩니다. 어떻게 그렇게 돌변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일상에서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우리들, 주님을 믿겠다고 약속하면서 주님을 배반하는 우리들, 주님의 거룩한 몸인 성체를 영하면서도 불의한 거짓말을 하고 때로는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우리의 행동들을 되돌아 봐야겠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행동들이 그토록 환영하며 맞이했던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어느 누가 나는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마르코 복음서가 전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를 들었습니다. 매 맞고 가시관을 쓰면서 수난과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 빌라도에게 사형선고를 받으시는 예수님, 십자가를 지고 세 번씩이나 넘어지면서도 죽을 골고타를 향하여 한 발 한 발 내딛으시는 예수님, 그런 중에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를 만나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마지막에는 바위동굴에 묻히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마땅히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무겁다고 피한다면 그 십자가는 누가 지게 될까요? 십자가는 피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십자가에 대해 늘 불만과 불평을 일삼는다면 그는 평생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신앙인들의 참모습은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데 있습니다.

십자가의 신비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은혜도 축복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성주간을 지내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의 절정을 보여주신 주 예수님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의 수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주님의 참사랑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또한 느끼신 그 사랑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성주간을 뜻깊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멘.

 

함창 본당 신기룡 안드레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