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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사순 제2주일] 나도 그분처럼 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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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분처럼 변하고 싶다

 

 

내 머리 위에는 어린 시절부터 커다랗고 무거운 물음표가 늘 따라 다녔었습니다. “, 살아야 하나...?” 삶의 의미가 별로 없고 삶을 살아갈만한 기운이 없었습니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신부가 되면 좀 나아질까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지속적인 삶의 불확실성과 불안은 마음에 일종의 긴장상태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 긴장은 빨리 해소되기를 원합니다. 더구나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에는 내면의 이런 긴장이 다양한 형태의 욕망으로 흔히 분출되어 나옵니다. 그리고 욕망을 해소하면 삶의 근본적인 이 긴장감이 해소될 것 같이 느껴집니다.

젊은 시절에 욕망은 내 삶의 화두였습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욕망을 보면서 하느님이 나를 이렇게 늘 갈망하면서만 살도록 만들어 놓치는 않았을 텐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러다가 끝나는 것이 삶인가?’라는 의문들이 늘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조금씩 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욕망들보다 더 강한 욕구가 내 안에서 올라오고 있음을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그것은 변화에 대한 욕구, 즉 새로워지고 싶은 욕구였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본래 나의 모습으로 변화하고픈 욕구였습니다. 늘 무언가를 갈망하면서 살아왔던 내 모습에서 그런 갈망으로부터 자유로운 본래의 내 모습을 되찾도록 부추기는 충동이 내면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끊임없이 번민하게 만들었던 욕망들은 내면의 결핍에서 비롯된 세속적이고 부정적인 욕구들이었다면 새로워지고 싶은 욕구는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영적이고 긍정적인 욕구였습니다. 새로워지고 싶은 욕구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하니 다른 욕망들은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욕망들 때문에 생기는 번민이 예전보다 줄어드니 삶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는 세 명의 제자들이 나옵니다. 산은 고대 종교나 신화에서 인간이 신을 만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올림푸스 산은 신들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모세를 비롯한 예언자들은 산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그러므로 산은 실제의 산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의 영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산에 오른다는 것은 세속적이고 부정적인 욕구들로 가득 찬 삶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지혜를 찾아가는 종교적인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고 예수님의 눈부신 변모를 보고 결국 하느님의 소리까지도 듣게 됩니다.

거기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제자들 앞에서 자신을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심으로써 모든 인간 안에 있는 새로워지고 싶은 강한 욕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희들도 나처럼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느낀 제자들의 감동은 사실 예수님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 안에서 올라오는 나도 이분처럼 변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였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변모를 통해 그 욕구를 반영해주는 좋은 거울 역할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욕구가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다른 위대한 사람을 통해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 안에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그런 멋진 욕구가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하고는 황홀감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황홀감에만 빠져 있을 수만은 없겠지요. 어차피 산을 내려와야 합니다. 다시 세속적이고 부정적인 욕망들로 번민하게 만드는 세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거룩한 변모에 대한 이 강렬한 체험은 세상이 주는 번민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줄 것입니다.

 

 

구담 본당 김기환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