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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이 복음서를 쓴 목적(요한 20,3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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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음서를 쓴 목적(요한 20,31 참조)

      

얼마 전 두 명의 재벌이 뇌물죄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고등법원(2)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다른 한사람은 감옥에서 실형을 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면면은 이름만 대면 아하 하고 알 만한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은 아버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아버지의 회장직을 물려받기가 부담스러운지(무슨 북한의 세습체제도 아니고...) 부회장의 직함으로 사실상 그룹의 총수역할을 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몇 해 전 형과 아버지와 그룹 총수가 되기 위해 이전투구 싸움판을 벌렸고 그 싸움에서 승리한 그룹 총수입니다. 이들은 보통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돈을 쌓아두고 있습니다. 평생을 일하지 않고 다발로 써도 다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돈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나봅니다. 이들의 실형 사유 중 가장 무거운 것이 뇌물죄였으니 말입니다. 정치권력에 뇌물을 제공하고 이권을 챙기거나 기업지배구조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한 것입니다.

사실 누구에게도 돈이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리고 돈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 없고 더 많은 돈을 가지기 위해 이전투구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기도 합니다. 돈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임에도 이제는 돈이 삶의 목적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돈은 아주 위험하기도 합니다. 돈에 집착하는 순간 돈의 노예가 되고 돈 때문에 형제, 친지, 이웃, 동료 간에 원수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든, 그 사람이 신앙인이건 아니건 누구라도 돈에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 시대에 돈은 하느님을 대신하는 또 다른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맘몬이 하느님을 대신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문을 걸어놓고 움츠리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요한 20,21-22) 그리고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제자들을 안심시키십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함께 있지 못했던 토마스는 다른 제자들의 예수님 부활 체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직접 보고 만져야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나타나신 예수님은 처음의 인사와 같은 인사말을 하고 토마스에게 확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제야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는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 20,26-29 참조)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그 말씀 뒤에 이 책을 쓴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0-31) 라고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돈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예수님보다 돈을 더 중요시 하는 것일까요?(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여전히 토마스와 같은 불신앙에 젖어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과 그 마음에 파고드는 불안과 유혹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복음서 저자는 이러한 사람들의 나약함, 토마스와 같은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믿음에 대해 이 책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표징도 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요.

개신교 신앙인이었던 장로출신 전직 대통령, 또 가톨릭, 개신교, 불교에서 세례와 수계를 받았고 샤마니즘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범 종교인인 전직 대통령. 그들은 돈과 관련하여 재판을 받아야하거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돈 때문에 벌어진 사단입니다. 돈이 잠시의 행복과 만족을 줄 수는 있겠지만, 생명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돈을 추구하면서 죽음의 길로 갈 것이냐? 아니면 예수님께서 가신 길, 사랑과 나눔, 섬김의 삶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은 생명을 누릴 것이냐?

교회는 참신앙의 길로 인도하는 인도자, 봉사자가 되어야 하고, 신앙인은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송현동 본당 배인호 베드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