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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부활 제3주일] 믿는다는 것, 그것은 하느님을 아는 것

사목국이메일

믿는다는 것, 그것은 하느님을 아는 것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을 찾았을 때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루카 24,41)

제자들은 성경을 잘 몰랐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은 음식을 드시고, 성경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곧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면서야 예수님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수난당하셨고, 부활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사도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이 죽으신 바로 그 예수님이심을 알게 되면서 믿을 수 있었습니다. 알지 못하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도 그 사람을 알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못박은 이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었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오해 되었습니다.

 

 

믿는다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는 만큼 믿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내 믿음의 깊이는 예수님에 대한 앎의 깊이 만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그만큼 신뢰하게 됩니다. 믿을 수 있을 만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그만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속고, 사기를 당하는 것일까요? 믿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기 마련입니다. 내 돈을 불려줄 것이라고, 내 사업을 성장시켜 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속았고, 사기를 당했습니다. 알기 때문에 믿게 되었는데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도들이 처음에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앞으로 차지하게 될 영광스런 자리를 탐내다 다툼을 하고, 배신하고, 도망쳤던 것처럼 말입니다. 용한 의사 정도로만 알고 몰려들었던 고향사람들처럼 말입니다.

함께 어려움을 겪어봐야 그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정한 친구를 구별할 수 있다 했습니다. 어려움에 처해 보아야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 수 있게 됩니다. 제대로 안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내 신앙의 깊이, 내 믿음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요? 더 깊은 믿음, 더 굳센 믿음은 더 깊이 제대로 알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되면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면 따르게 됩니다.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고, 딱 그만큼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복음은 사도들의 모습을 통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제대로 따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대로 알지 못한 사도들을 깨우쳐 줍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비로소 제대로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제대로 알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분께서 깨우쳐 주십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우리가 더 잘 배울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영양 본당 양호준 델피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