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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선교는 하느님의 일이자 교회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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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하느님의 일이자 교회의 일

 

 

오늘 1독서 말씀이 포함된 사도행전은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유다교의 한계를 벗어나 보편성을 가지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유다인들이 주축이었던 초대 교회는 비 유다인들의 그리스도교 입문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였다. 중요한 이유 하나는 이방인들의 음식 문화였다. 유다인들은 깨끗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세세히 규정하고 철저히 지켰다. 예를 들면,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짐승,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생선만 먹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이러한 유다교의 음식 규정을 지키지 않았기에, 유다인들이 볼 때 그들은 부정한 자들이었다. 따라서 유다인 출신 그리스도교인들은 부정한 이방인들이 세례를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종교와 인종, 문화와 전통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선교를 위해 친히 활동하신다. 여기서 하느님은 선교의 주도권이 당신께 있음을 보여주신다. 먼저 하느님은 베드로에게 한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하신다. 베드로가 허기졌을 때 하늘에서 큰 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안에는 모든 종류의 동물들이 들어있었다. 하느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것을 먹으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베드로는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망설였다. 그 안에 부정한 동물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모든 동물을 깨끗하게 만드셨다고 한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세 번이나 하느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결국 그 동물들을 먹지 않는다. 오랜 관습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하느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데도 차마 그 명령을 따르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 신비 체험은 베드로에게 깊이 생각할 거리를 준다. 베드로가 그 체험의 의미를 곱씹고 있을 때 하느님은 다른 쪽에서 활동을 시작하신다.

하느님의 천사가 로마의 유력한 가문 출신의 코르넬리우스에게 나타난다. 이 인물은 우리 교구 내의 우곡에 살던 한국 최초의 수덕자 농은 홍유한 선생과 닮은 면이 있다. 세례를 받지 않았으나 홀로 하느님 말씀을 접하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였던 농은 선생처럼, 코르넬리우스도 유다인이 아니었고 할례도 받지 않았지만, 하느님을 알고 경외하였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표현을 따르면 하느님께서 선교사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말씀의 씨앗을 뿌려 두신 것이다. 하느님의 천사는 코르넬리우스에게 베드로를 청하라고 말하고, 이 말씀을 따라 코르넬리우스는 심부름꾼들을 베드로에게 보낸다.

이때 자신의 신비 체험을 통해 깨끗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 깨끗한 민족과 부정한 민족의 구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던 베드로는 성령의 말씀에 따라 그들과 함께 코르넬리우스 집으로 간다. 거기서 복음을 가르칠 때, 그들 안에 있던 말씀의 씨앗은 그 싹을 틔우고, 그런 그들 위에 성령이 내린다. 우리는 흔히 성령은 세례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도행전의 말씀은 성령은 세례를 앞서 선교 과정 안에 이미 현존함을 보여준다. 성령의 강림을 본 베드로는 더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들에게 세례를 베푼다.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은 한편 선교사를 가르치며 준비시키고, 다른 한편 선교의 대상 안에 말씀의 씨앗을 뿌려 두신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게 하신다. 선교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그 자리에는 성령이 함께하신다. 이처럼 선교의 주도권은 철저히 하느님께 있다.

하지만 하느님은 만백성을 위한 당신 구원 계획의 실현을 위해 교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신다. 우리 그리스도교인은 세례받을 때부터 근본적으로 그 본질이 선교사다. 선교사로서 우리는 하느님의 이끄심에 따라 늘 자신을 초월해야 한다. 성령께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 자신을 가득 채워야 한다. 하느님 구원의 도구로 우리 자신을 기꺼이 봉헌해야 한다.

 

영덕 본당 함원식 이사야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