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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승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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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의 의미

 

 

승천의 개념은 그리스도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그 안에 묻힌 왕들이 하늘에 오르게 하는 사다리고,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쉬 서사시는 웃나피쉬팀이라는 의인이 승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는 죽은 뒤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에 실려 하늘에 올라갔다. 이러한 승천은 영웅들이 죽어 평범한 이들과 함께 죽음의 세계에 갇히지 않도록 해주는 신들의 선물이다.

구약성경과 유다교에도 승천이 등장한다. 구약성경은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을 기록하고 있으며, 유다교는 모세와 이사야도 승천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승천은 단지 죽음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외경인 에녹서에 따르면 에녹은 인간 세상을 통치하는 하느님의 일을 돕기 위해 하늘에 들어 올려졌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신약성경에서 오직 루카의 두 책,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만이 예수의 승천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책들은 예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부활한 육신을 지니고 승천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승천의 첫 번째 의미를 알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육신을 버리지 않으신 채, 즉 인성을 지니신 채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셨다는 것은 우리 또한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인성을 지니고 승천하신 것의 두 번째 의미는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신 뒤에도 친구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고, 남편을 여읜 뒤 유일하게 의지가 되었던 외아들마저 잃은 나인 과부의 비통함을 공감하며, 불의한 일 앞에서는 분노를 참지 않으시고, 38년 동안이나 불구로 살던 사람을 측은히 여기시던 그 예수님으로 남아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전히 죄 외에는 우리와 똑같았던 그분으로 남아 우리와 공감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예수 승천의 세 번째 의미는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전 40일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셨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40이라는 숫자는 완전함, 충만함을 뜻한다. 부활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살았던 40일은 무엇을 위해 완전한, 충만한 기간이었을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고도 그분의 부활을 믿는 것이 어려웠다. 예수께서 이러한 제자들과 함께 40일 동안 지내시면서 삼 년간 제자들과 동고동락했던 바로 그분이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확신을 주셨다. 그리고 제자들 앞에서 당신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이로써 제자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바로 그분이 부활하신 분이시며, 부활하신 그분이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셨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 되었다. 이를 통해 십자가가 천국 문을 여는 열쇠임을 알게 되었다.

예수 승천의 네 번째 의미는 승천이라는 사건이 예수님의 활동과 교회의 활동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같은 저자가 같은 독자를 대상으로 집필한 한 쌍의 책인데,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는 루카 복음서가 예수 승천으로 끝나고, 교회의 이야기를 하는 사도행전이 예수 승천으로 시작하는 것은 승천이라는 사건이 예수님과 교회의 연결고리임을 드러낸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 전까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늘나라에 관하여 가르치신 것은 교회가 앞으로 당신의 뒤를 이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신 것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온 세상 사람들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뒤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느냐라고 하였다. 우리는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땅에서 예수께서 하셨던 일을 이어서 해나가야 한다.

 

영덕 본당 함원식 이사야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