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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사랑과 섬김과 용서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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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섬김과 용서의 왕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리스도께 바쳐진 왕이라는 이 칭호는 그분의 전 생애 중 시작과 마지막에만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유다인의 왕을 찾는 박사들을 외양간으로 인도했고, 마지막에는 십자가 위에 달아 둔 조소의 명패에 이 칭호가 나타납니다. 외양간에서 십자가로, 왕에게 어울리지 않는 참 기이한 경력입니다.

러시아에서 내려오는 성탄절 전설 중에 <넷째 왕의 전설>이 있습니다. 이 전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멜키올(Melchior), 발타살(Balthassar), 가스팔(Caspar) 외에 다른 한 왕의 삶을 보여 주면서 외양간에서 십자가까지의 길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황금이나 유향 또는 몰약이 아닌 귀한 보석 3가지 선물을 가지고 넷째 왕은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가는 도중에 왕은 길가의 쓰레기 더미에서 다섯 군데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서 다 죽어가는 한 어린 아기를 발견했습니다. 왕은 그 아이를 안고 마을을 찾아 데려가서는 자기가 가진 3가지 보석 중 하나를 주고는 아이를 건강하게 잘 보살펴 주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또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왕은 가던 길을 계속 가다가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는 아이들과 그 어머니가 남편의 주검 뒤를 따라가는 장례 행렬을 만났습니다. 죽은 남편은 많은 빚을 떠안은 채 죽었기에 아이들은 노예로 팔려가야만 될 처지였습니다. 이것을 본 왕은 또 하나의 보석으로 그 빚을 다 갚아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족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왕에게는 하나의 보석만 남았습니다. 왕은 가던 길을 계속 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마을에 들렸는데 그 마을은 군인들에게 점령되어서 마을의 남자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갈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왕은 이들을 살리고 마을을 구하기 위해서 마지막 남은 귀한 보석을 내놓았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말 한 필 뿐이었습니다. 왕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계속 가다가 그 왕은 어떤 노예를 만났습니다. 그 노예는 자기 주인의 뜻에 불순종하다 부인과 아이들을 버려둔 채 큰 배의 노 젓는 노예로 팔려가야만 했습니다. 이것을 본 왕은 자기 말을 넘겨주고 그자를 대신해서 노 젖는 노예로 배에 올랐습니다. 세월은 한참 흘렀습니다.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왕의 머리는 벌써 반백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이름도 모르는 어느 외국 땅에서 사형집행을 지켜보기 위해 도시로 몰려드는 군중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사형날이었습니다. 못 박히신 분의 눈길이 자기를 내려다 보았을 때 왕은 불현듯 거의 전 생애 동안 순례했던 목적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십자가에 달리신 분께 자기의 빈손을 뻗었습니다. 그때 십자가에 달린 왕의 뻗쳐진 손에 세 방울의 피가 떨어졌습니다. 세 방울의 피는 자기가 가졌던 세 가지의 보석보다도 더 빛났습니다.

비록 이 이야기는 성경에 실려 있지는 않지만 그 내용은 오늘 우리가 지내고 있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진정한 의미를 잘 일깨워 줍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왕은 역사 속의 일반적인 왕과도 전혀 다른 왕이시며 우리가 익히 생각하는 왕의 모습과는 하나도 닮지 않은 그런 왕이십니다. 이 왕이 이룩하려는 왕국 또한 결코 이 세상이 생각하는 그런 왕국이 아닙니다. 세상의 왕들처럼 백성 위에 군림하면서 힘으로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아픈 사람을 고쳐 주고, 소외 받고 보잘 것 없고 죄인 취급받는 이들을 벗으로 대접하는 독특한 방법 즉 사랑의 방법, 섬김의 방법으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면서 축일을 지내는 진정한 의미는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왕이 되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대접받고 섬김을 받으면서 떵떵거리는 삶을 사는 왕이 아니라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실천하고, 남을 섬기는 그리스도와 같은 왕이 되라는 겁니다. 또한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면서까지 자신을 죽인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 하느님께 청하셨던 그리스도와 같은 용서의 왕이 되라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있는 우리 모두는 그분과 같이 사랑과 섬김과 용서의 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러시아의 <넷째 왕의 전설>에 나오는 그 왕처럼 참 왕이신 그리스도의 손에서 떨어지는 보석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화령 본당 김시영 베드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