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속 안동교구

지난 2월 8일 한국가톨릭농민회 23대 회장으로 선출된 이상식 회장(대건안드레아,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장수분회)을 농민주일을 즈음해 만났다. 안동과 서울을 오가고 여러 지역을 찾으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이상식 회장은, 당장 농사일이 눈에 밟혀도 할 수 없는 것이 가장 답답하다고 말하는 천상 농부였다. 그에게 생명농업운동을 이끄는 농부로서의 삶과 꿈, 전국 가톨릭농민조직의 수장으로서의 포부에 대해 물었다.

▲ 한국가톨릭농민회 이상식 회장 ⓒ정현진 기자

20대 초반에 들어선 농민운동의 길
10여년 째, 유기축산 실천하는 농부, 생명운동가로...

이상식 회장은 안동 가톨릭농민회 회원으로 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장수분회에서 31두의 소를 유기축산하는 농부이자, 생명운동가다.

80년대 농촌에 성행했던 고리대 문제(당시 연 60%)를 해결하려고 뛰어다니다가 만난 것이 고향 선배이기도 했던 농민운동가였다. 20대 초반의 철없던 시기,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고 여겼다는 그는 농민회를 가입해 농산물 생산에 대한 것은 물론 철학과 역사 등을 공부하면서 점점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생기고, 농민회 안에서 농협민주화, 세제개편, 수입농산물 저지 운동, 생산비 보장운동, 여성운동을 거치면서 유기농을 중심으로 하는 생명농업운동까지 가 닿았다. 그렇게 평생 농민운동을 하면서, 전국 조직에서 뜻을 펼쳐보겠다는 마음을 품었고 정작 농민회장의 자리에 왔지만, 농사일과 전국본부 일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농사일을 어느 정도 접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단을 어렵게 했다. 다행히 작년부터 귀농한 동생이 5두의 소를 기르는 어엿한 농부가 됐고, 형과 함께 농민운동에 동참하는 동지로  큰 힘이 되고 있다.

이상식 회장은 지역 내 순환만으로 유기 축산을 하기 위해 적정 규모와 방법을 연구해왔다. 먼 지역에서 먹이를 실어오는 것이 아니라 마을 내에서 나는 작물로 먹이를 충당하면서, 2-3명의 한 가족이 무리 없이 소를 키울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때문에 만 평 정도의 논밭 중 천 평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료작물을 2모작으로 거둔다. 봄에는 옥수수, 가을에는 호밀류를 심어 사료로 쓰고, 한 가구당 적당한 두 수는 25~30마리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이러한 유기축산 운동을 실험하고 본격화 한 지 10여년이 된 지금 안동에서 원주, 춘천, 광주, 전주 등 지역과 한 살림까지 확산시켰다고 하면서, “지금도 계속 사례를 만들고 기준을 세우는 중이지만, 거의 자리가 잡힌 상태다. 외부에서 생산된 사료작물도 통제하지만 무엇보다 송아지 자체도 우시장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끼리 마련한다”고 말했다.

소고기 직거래의 궁극적 목적은 ‘소고기 덜 먹기 운동’
현행 소고기 등급 체계 무너뜨리고 새로운 등급제 만들어야

이렇게 유기축산으로 기른 소는 의정부교구 화정동 성당 등 도시 성당에서 ‘소 나눔’을 통해 소비한다. 이상식 회장은 자신이 유기축산을 하고, 소 나눔으로 도농 직거래에 참여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소고기 덜 먹기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생명운동의 관점에서 소고기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축산 방법과 환경, 도축 기준, 국민의 건강 등 여러 문제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현재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소고기는 이른바 ‘마블링’이 많은 고기다. 그러나 그런 소고기는 결코 정상적으로 사육한 것이 아니다. 소는 원래 지방이 적은 동물이고, 지방이 끼었다는 것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환경에서 옥수수가 주재료인 사료를 먹은 이른바 ‘비만 소’다”라고 하면서, “유기축산한 소고기를 일반 시장에 내놓는다면 제대로 등급을 받지 못할 것이다. 전국의 한우 농가가 모두 마블링이 좋은 소를 생산하는 방법으로 사육하고 있고, 결국 필요 이상의 사료 곡물이 수입되고 또 소비된다. 현재 소고기 등급 체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등급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의 발전, 활동가 재생산 체제 필요
자발적, 소규모 생협 수없이 생겨나야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산다

자연히 이야기는 도시 성당에서 직거래에 참여하는 활동가들의 문제로 옮겨갔다. 이상식 회장은 무엇보다 현재 도시생활공동체 활동가들의 피로도가 상당하다고 우려하면서,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제자리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재생산 체계를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도 활동가들의 과부하 문제는 구조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본당 구조상 사제가 바뀌어 방침이 달라지고, 활동가가 힘들어서 그만두게 되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면서, “운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본당 을 중심으로 한 소비자들이 생협의 형태로 조직화되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 스스로 공부도 하고 체계적인 역할을 맡아 사람과 가치의 재생산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식 회장은 특히 소규모 생협의 활성화와 소비조직의 네트워크를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 집단이 필요성을 공유하면서 자생적으로 결성한 소규모 생협이 많이 생겨, 그 구조 안에서 농산물이 직거래되는 체제를 만드는 것만이 희망이라고 했다. 그래야만 생산농가도 살 수 있고, 소비자들의 원하는 맞춤 농산물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2년의 임기동안 할 일은 농업계 전체가 한 목소리를 내고, 농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과제를 발굴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같은 입장을 갖고 ‘국민농업’이라는 말을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농민, 삶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운동 과제 발견해 지역의 소금역할 해야
도시 소비자, 국민 농업의 주체로 농업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해야 할 것

그는 “80년대 천만 농민은 이제 3백만도 채 남지 않았다. 사회적으로도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농민 우민화 정책의 폐해가 남아, 농민들의 의식 각성이 큰 과제다. 농민들의 의식이 높아지는 만큼, 제도와 체제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면서,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역시 가톨릭농민회와의 철저한 분리를 통해 특수성을 살리고, 가톨릭농민회 또한 생명운동과 농민 조직화에 몰입해야 한다. 농민들도 삶의 자리에서 운동 과제를 발견해 지역의 소금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은 침체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농업은 누군가는 짊어지고 가야 한다. 농민이 재생산되는 틀을 구축하자고 나선 것이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다. 임기동안 최선을 다해 농민들도 농민회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 것이다. 농민들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자식들에게 농사를 물려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마저 자식에게 농사를 시키지 않겠다면 그것은 위선 아닌가? 힘든 일이기에 보람이 있고, 가치가 있다면 할 만 한 것이다. 우리 회원들이 그런 농촌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고, 스스로도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이어 도시 소비자들의 몫에 대해서도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 최근 등장한 ‘국민 농업’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소비자들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라는 그는, “생명운동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농업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알고 참여해야만 한다. 성당을 중심으로 한 우리농촌살리기운동, 민우회, 두레생협 등이 활성화되어 소비의 한 축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식 회장은 마지막으로 “희망은 언제나 있다. 그리고 이미 해답도 가지고 있다. 이제 실행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라고 하면서, “생산자든 소비자든 생명운동의 차원에서 입장은 같다. 세상을 바꾸려는 큰 그림 안에서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집을 짓는데 벽돌 하나 놓고 간다는 마음으로, 그러나 절대 그만두지 말고 끝까지 간다면 언젠가 우리의 뜻이 크게 펼쳐지지 않겠는가”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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