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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하며 가족간 인내와 사랑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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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식·최복순씨 부부와 큰아들(가운데)이 원주교구 용소막성당 앞에서 활짝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둘째 아들이 찍은 사진이다. |
아빠는 운전대를, 엄마는 묵주를 잡았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큰아들은 동생 도움을 받아 차에 올랐다. 순례 내내 차 안에서는 묵주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네 식구는 가까운 성지부터 하루걸러 순례하며 2개월 만에 전국 111개 성지를 모두 순례하는 여정을 마쳤다.
이들은 "103위 순교성인 호칭기도에서만 만났던 성인들 순교터와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서 "그분들이 얼마나 힘겹게 신앙을 증거했는지 절절히 체험한 감사와 기쁨의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순례를 마친 지 일주일 후인 9월 19일 이들을 인천 자택에서 만났다.
교구와 본당에서 활발히 봉사활동을 하던 최복순(안나, 55, 인천 가좌동본당)씨는 방학기간 잠시 휴식을 취할 요량이었다. 남들 다 가는 바닷가에 가서 달콤한 휴가를 지내볼까도 꿈꿨다. 하지만 기도 중에 들린 주님 음성은 '성지순례'였다. 최씨는 특별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발표한 자의교서 「믿음의 문」을 접하고, 성지순례로 가정성화에 불을 지펴 참된 신앙의 해를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길로 주교회의가 발간한 성지안내 소책자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를 구입했다.
택시기사인 남편 김광식(요셉, 56)씨는 아내의 뜻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걱정이 앞섰다. 큰아들 김병선(베드로, 34)씨는 장애가 있어 장시간 이동이 어렵고, 작은아들 김병철(바오로, 32)씨는 유아세례만 받고 성당에는 나가지 않는 냉담교우였기 때문이다.
최씨는 "남편과 저는 각자 뇌경색과 뇌협착증을 앓았던 환자"라면서 "몸이 성치 않은 환자와 냉담교우를 전국 성지로 이끈 것은 순전히 주님 계획이었다"고 고백했다.
'육(肉)적 환자'와 '영(靈)적 환자'가 섞인 가족은 성지순례 주제 성구로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를 정해 가슴에 새기고 순례길에 올랐다.
순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꼭두새벽 일어나 출발한 어느 날 큰아들이 그만 차에서 '실례'를 해버린 것이다. 비가 내리는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엄마는 연신 바지를 닦고, 아빠는 길가에 환자용 간이 화장실을 펼치고 우산을 들고 섰다.
웃지 못할 일은 또 있었다. 작은아들은 순례 내내 "왜 순교성인들은 큰 길가에서 돌아가시지 않고 모두 산속에서 돌아가셨느냐"며 불평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성지와 공소에서는 기어이 미사에 참례하지 않고 차를 지켰다. 그래도 엄마 최씨는 불평 가운데 주님을 알아가는 아들의 모습이라 여겼다. 그래도 덩치 큰 작은아들은 순례 내내 아픈 식구들의 든든한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순례길 발이 돼 준 택시는 툭하면 주유 등에 불이 들어왔다. 연료가 LPG 가스인 데다 지방엔 가스 주유소도 잘 없어 가족은 늘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건강 때문에 평소 반나절 100㎞가량만 운전하는 남편은 부산교구 등 멀리 다녀올 때는 1000㎞ 넘게 운전하기도 했다. 순례 기간 7000㎞ 넘게 달린 김씨는 "정말 신기하게도 다녀와서 눈이 조금 충혈되는 정도였을 뿐 몸에 큰 무리는 오지 않았다"고 웃음 지었다.
부부는 "순례 기간 내내 주님께서 늘 함께하셨다"고 입을 모았다. '하느님께서 뱃길을 터주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으로 알려진 제주교구 추자공소는 이들이 다다랐을 때 거짓말처럼 날이 개었다. 춘천교구 금광리공소에선 관할 본당 신자들이 김씨 가족의 순례를 도와줬다. 휴게소에서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워도 순교성인을 만나는 기쁨이 이들의 순례여정을 이어줬다. 마지막 안동교구 우곡성지에서는 작은아들도 미사에 참례했다. 성지 담당 사제는 미사가 없는 시간임에도 가족을 위해 특별히 미사를 주례해줬다. 10년 넘게 아들을 위해 기도해온 엄마는 사제에게 안수받는 둘째아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최씨는 "순례하면서 둘째아들과 수없이 티격태격했지만 순례를 통해 가족 간 사랑과 인내와 일치를 배울 수 있었고,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하신 주님 말씀을 가슴 깊이 되새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냉담교우로 전국 성지순례한 사람은 작은아들이 처음일 것"이라며 이번 순례를 계기로 아들이 냉담을 풀고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기를 기대했다.
김씨는 "평생 기억에 남을 전국 성지순례를 하면서 '영적 부부'로 다시 태어났다"며 "힘겨운 가운데서도 주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순례의 매력을 주변에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인천교구 첫 전국 성지순례 가족으로 기록된 부부는 교구 제물진두 성역화를 위한 성지순례 등 교구 성지순례에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동참하길 희망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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