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보다 모래 많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사천
모래 덕분에 수질정화 및 작은 생태계 조성
영주댐 건서로 모래 유실...물부족ㆍ오염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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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태답사팀과 관광객들이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에 있는 섶다리를 건너고 있다. 섶다리는 얕은 개울을 건널 수 있게 통나무를 이어 만든 다리다. |
눈옷으로 갈아입은 겨울 내성천은 희고 고요했다.
최근 한반도를 꽁꽁 얼어붙게 한 혹독한 한파 때문인지 내성천은 진귀한 겨울풍경을 선물했다. 내성천은 모래 덕분에 온도가 금세 오르기에 겨울에도 좀처럼 눈이 덮이는 일이 없다. 그런 내성천이 성탄절을 열흘 앞둔 15일 흰 눈에 뒤덮였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위원장 조해붕 신부)가 이날 내성천과 인근 회룡포, 영주댐 일대를 답사하는 '겨울 내성천 생태답사'를 통해 가본 내성천은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이 없었다. 생태답사팀 일행 34명이 내성천을 걷고 사진을 찍고 느낀 점을 나누느라 입을 열지 않았더라면 물 흐르는 소리조차 느껴지지 않았을 완벽한 '고요함'이었다. 힐링이 따로 없었다. 독자 여러분을 눈 덮인 내성천으로 안내한다.
내성천(영주ㆍ예천)=이힘 기자
lensma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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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태답사팀 일행이 겨울옷으로 갈아 입은 내성천을 걷고 있다. |
#하느님의 선물, 내성천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발원해 영주시를 관통하고, 남쪽으로 안동을 거쳐 예천군 용궁면 남쪽에서 낙동강과 만나는 내성천은 낙동강의 780개 지천 중 하나이자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모래 강이다.
강이라 하면 대개 흐르는 물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내성천은 모래가 물보다 많아 모래내 또는 사천(沙川)이라고도 불린다. 길이는 106㎞가량. 대부분 모래를 밟으며 걷는 도보답사가 가능하다. 이런 지천은 우리나라에 내성천 말고는 없다.
조용히 흐르는 내성천이지만 발목까지 오는 얕은 물 밑에는 모래가 물결을 따라 계속 구르듯 이동한다. 내성천 모래는 인근 산에서 오랜 풍화작용을 거쳐 생성된 화강암이 원료다.
모래강, 내성천의 이러한 모습을 내년부터는 보기 어려워진다. 4대강 사업 일환인 영주댐 건설 때문이다. 상류에 영주댐을 건설함으로써 강물을 맑게 하고, 도요새 등 철새들 보금자리가 돼 주는 내성천 모래가 점점 줄어들어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날 생태답사팀 일행을 안내한 생태사진가 박용훈(53)씨는 "전문가들조차 아무리 생각하고 살펴봐도 건설의 타당성을 알 수 없는 영주댐 때문에 내성천 모래가 점점 줄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2009년부터 직장도 그만두고 내성천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왔다는 박씨는 "모래가 사라지고 나서야 강에서 모래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깨닫게 됐다"며 "모래 없는 강은 필터 없는 정수기나 마찬가지로, 4대강 사업은 정수기에서 가장 중요한 필터를 점차 빼내고 정수기 통만 키우는 이해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다양한 생명의 원천 내성천, 하지만
겨울철에 겨우 발목까지 물이 차는 내성천은 깊지는 않지만 다양한 생명을 품는 어머니 품과 같은 존재다. 내성천이 맑은 이유는 이곳 모래가 인근 마을에서 배출하는 생활용수와 축산폐수까지 말끔히 처리해주는 덕분이다.
박씨 설명에 따르면 모래에는 많은 미생물이 붙어살 수 있다. 이 미생물을 먹잇감으로 삼는 플랑크톤이 모래 주위에 살게 되고, 플랑크톤을 먹는 작은 조개와 유생, 작은 물고기들이 살게 된다. 이를 먹는 큰 물고기가 살 수 있고, 철새들이 날아온다. 모래 덕분에 다양한 생명을 관찰할 수 있는 작은 생태계가 꾸려진다는 것.
내년이면 상류 모래가 댐에 가로막혀 그 밑으로는 쌓이지 않게 된다. 모래가 사라지면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던 철새들은 먹이를 구하지 못한다. 열흘 넘게 몸무게 절반이 줄면서 쉬지 않고 날아오는 철새들은 먹지 못하면 강가에서 목숨을 잃는다는 설명이다.
내성천에는 송사리와 미꾸리 등 토종 어종이 많다. 이를 먹이로 삼는 좀 더 큰 물고기와 수달, 너구리도 산다. 내성천의 모래를 잃는다는 것은 플랑크톤부터 수달까지 수천 년 변함없이 살아온 하느님 피조물을 더는 못보게 된다는 뜻이다.
내성천의 생태학적 가치는 외국에서 더 잘 안다. 독일의 세계적 하천 전문가 베른하르트(칼스루에대학) 교수는 몇 해 전 내성천을 답사하고 "독일이었다면 내성천은 '국립공원감'이다.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감탄했다.
미국 환경계 석학 랜디 해스터(UC버클리대) 교수도 "평생 미국의 모든 강을 둘러봤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모래강은 미국에서도 딱 한 곳밖에 본 적이 없다"며 "은퇴 후에는 내성천 마을에서 살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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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예천군 용궁면 회룡마을 앞 뿅뿅다리. |
#영주댐 때문에…
일행은 내성천과 회룡마을, 뿅뿅다리를 지나 공사가 한창인 영주댐 때문에 모래가 사라진 내성천의 한 지점(영주시)을 방문할 수 있었다. 회룡마을 인근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과 달리 거친 자갈과 돌이 가득한 매우 다른 모습에 일행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평생 영주에서 살았다는 농민 권태종(59)씨는 "댐 건설 이전 내성천은 전체가 모래였고, 자갈이 보인 적은 없었다"며 "모래가 있어야 물이 있는데, 농사용수는커녕 먹을 물도 부족해졌고, 공사로 시멘트 섞인 물이 내려와 물도 오염됐다"고 우려했다.
영주댐 건설현장 인근 내성천 역시 예전엔 고운 백사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돌밭이다. 그리고 풀이 많다. 잡초가 많이 자랐다는 것은 강이 정상적 기능을 못한다는 소리다. 댐 때문에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일대 540여 농가가 수몰될 예정이다.
시험 담수를 하는 내년이면 평은초등학교와 인근 교회 등이 물 속으로 사라진다. 댐 건설로 철길과 다리를 새로 놓고, 터널을 뚫는 불필요한 공사도 한창이다.
내성천에서 물놀이하며 자랐다는 권성민(하상 바오로, 53, 서울 구의동본당)씨는 "어린 시절에는 장마철 물이 많아지면 뗏목을 만들어 탄 기억이 난다"며 내성천이 본 모습을 잃는 것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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