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속 안동교구

“주님께서는 제가 제 조상들에게서 받은 상속 재산을 임금님께 넘겨 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1열왕 21,3)

한국 가톨릭교회가 세상의 아픈 현장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의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작금의 여러 한국의 상황들, 특히나 주민들과의 대화를 강조하던 기존의 입장을 바꿔 밀양 송전탑 공사를 하고 있는 한전과 정부 때문에 당하는 밀양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상황은 재차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관심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밀양의 힘없는 주민들이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은 우리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요구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입니다.

밀양의 급박한 상황을 접하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시기에 어처구니없게도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힘없는 이들에게 관심을 보인 가톨릭교회와 시민사회의 탈핵운동가들을 지역주민을 “세뇌”하는 불순한 세력으로 매도한 한전 부사장 변준연 씨의 발언은 묵과할 수 없습니다.

변준연 씨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밀양의 송전탑 건설은 국민을 위한 사업이 아닙니다. 그 옛날 자신의 정원을 소유하기 위해 가난한 백성 ‘나봇’의 포도원을 모략과 폭력으로 빼앗았던 ‘아합 왕’처럼 한전이라는 기업과 그와 연관된 자본의 이익을 위해 힘없는 밀양 시골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기만과 폭력으로 얼룩진 죄악의 과정임을 알고 있습니다.

국내 전체 발전용량의 1.7% 밖에 되지 않는 규모의 신고리3호기가 가동되지 않으면 전력대란이 일어난다는 한전의 주장은 송전탑 건설이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계약 조건 때문이라는 변준연 부사장의 발언을 통해 국민과 밀양 지역 주민들을 기만한 거짓 주장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결국 국민의 안정된 삶을 우려하며 공사를 추진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던 한전의 태도는 그 자체로 국민과 밀양 지역 주민들을 기만하고, 기업과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행태였음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이에 전국 각 교구의 환경사목기구와 활동가들의 연대체인 천주교창조보전연대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합니다.

1. 한국전력공사는 변준연 부사장의 발언에서 드러났듯이 신고리3호기를 위한 송전탑 공사가 기업과 자본의 이익을 위한 행위였음을 국민과 밀양 지역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폭력적인 송전탑 공사를 중단하고, 대다수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대책위와의 대화의 장에 아무 조건 없이 나와야 합니다.

2.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밀양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송전탑 건설로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될 현재의 핵발전소 중심의 에너지정책을 폐기하고, 소비지 인근에서 에너지를 생산 공급하는 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를 위해 노후원전을 폐쇄하고, 신규원전건설을 중단하고, 재생 가능한 친환경 에너지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3. 국민대통합을 정책 모토로 삼는 현 정부의 국정기조에 비춰볼 때에도 사회적 약자를 위해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이들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것이 상식인데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와 시민사회의 탈핵운동가들을 밀양 지역 주민들을 “세뇌”시킨 불순세력으로 매도하여 모욕을 주고, 여론을 호도한 변준연 한전 부사장과 한전, 공권력을 동원하여 지역 주민들을 탄압하는 정부는 지역 주민과 가톨릭교회와 탈핵운동가들에게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변준연 부사장의 문책과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합니다.

2013년 5월 24일
천주교창조보전연대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수원교구 환경위원회, 나눔플러스, 마중물, 인천교구 가톨릭환경연대, 의정부교구 환경 · 농촌사목위원회,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곰네들, 부산교구 생명환경사목위원회, 우리농운동본부, 안동교구 생명환경연대,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예수고난회,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