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속 안동교구

ㆍ선종 2주기 맞아 민주화사업회서

1970~80년대 정치적 암흑기에 농민들의 운동을 이끌고 조직했던 투사 신부, 스스로 농부의 삶을 살았던 정호경 루도비꼬 신부(1940~2012·사진)의 선종 2주기(4월27일)를 앞두고 그의 삶의 이야기가 평전으로 나왔다. <농민이 된 신부 정호경>은 ‘노동하는 예수’를 따른 정 신부를 기리고 그 뜻을 알리기 위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했다. 민주화운동에 혼신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평전 출간을 지원하는 기념사업회 사업의 첫번째 결과물이다.

 

정 신부는 1974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결성에 참여하고, 1977년 안동교구 사제단의 긴급조치 해제 요구 기도회를 주도해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됐다. 이어 농민운동 조직인 가톨릭농민회를 만들어 초대 지도신부를 맡은 그는 1979년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회원이었던 오원춘씨 납치사건에 항의하다 두 번째 옥고를 치렀다. 천주교가 농부들의 친근한 벗이 된 데는 10년 넘게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로 활동한 그의 헌신적인 발품과 소탈함이 큰 몫을 했다.

정 신부는 1992년 “너무 오래 ‘입품, 글품’으로 살았다. 이제는 땀 흘려 일하는 ‘일품’으로 살고 싶다”라는 뜻을 밝히고 남은 생 20여년을 농사꾼이자 목공으로 살았다. 경북 봉화군 비나리 마을에서 4년에 걸쳐 손수 집을 짓고 2000평이 넘는 땅에 유기농 농사를 지었다. 틈나는 대로 성경구절을 목판에 새기는 작업을 해 <전각성경, 말씀을 새긴다>를 냈다. <반야심경> <장자> <우파니샤드> 등 종교의 벽을 넘어 다양한 경전들을 해설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정 신부는 농민들과 함께 진정한 생활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했다.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고, 교회와 교회밖 세상을 아우르고, 개개인의 굴레와 세상의 죄를 동시에 구원하기를 원했다. 가톨릭농민회에 비신자를 회원으로 받아들인 것, 제도교회의 거창함에 대한 날선 비판과 함께 진정한 공동체의 모범으로 공소공동체 활성화를 호소한 것은 그런 뜻이었다.

기록·정리는 가톨릭 언론인 한상봉씨가 맡아 “귀감과 스승이라는 말에 제대로 어울리는 삶”의 여정을 담담하게 풀어 썼다. 정 신부는 몸져 눕기 전인 2009년 11개 항목의 유서를 써놓고 3개월 동안 해안선 도보순례를 했다. 그는 비나리의 땅뙈기를 안동교구 명의로 돌려놓고 자신의 은행통장 비밀번호와 함께 남은 돈의 용처까지 일러두며 온전한 ‘비움’이 되어 떠났다. 그의 유서 마지막은 이렇게 맺는다. “모든 생명이 욕심을 버리고, 더불어 일하며 정을 나누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경쟁의 문명은 공멸입니다. 상생의 문명만이 구원의 길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