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된 신부 정호경
한상봉 지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리북/1만 6000원
아는 이는 알지만 모르는 이는 또 모르는 정호경(1940~2012) 신부. 그러나 정 신부를 아는 이들은 그를 우리 시대 귀감이요 스승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책은 낮은 곳에서 생활공동체를 일구고 농민운동을 이끌었으며, 마침내 스스로 농부가 된 정호경 신부에 대한 평전이다.
대표적 농촌 교구인 안동교구 소속으로, 농민과 함께하며 가톨릭농민회를 만드는 데 정 신부보다 헌신적인 이는 없었다. 10년 넘게 가톨릭농민회 담당 신부로서 농민 생활공동체 운동의 버팀목이었던 그는 1974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결성에 참여한 뒤 두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정 신부는 "너무 오래 '입품, 글품'으로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땀 흘려 일하는 '일품'으로 살고 싶습니다"라는 뜻을 밝히고 남은 생 20여 년을 농사꾼으로 살았다. 1992년부터 경북 봉화에서 손수 집을 짓고 유기농 농사를 지었다. 틈나는 대로 성경구절을 목판에 새겨 「전각성경, 말씀을 새긴다」는 제목의 책을 내고,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다양한 경전을 직접 해설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
마무리도 더 없이 깔끔했다. 생을 정리하는 도보순례를 떠나기 전에 유서를 작성한 그는 자신의 은행통장 비밀번호와 함께 남은 돈의 용처까지 일러두며 온전한 '비움'이 되어 하느님께 돌아갔다. 유서 마지막은 이렇게 맺는다. "모든 생명이 욕심을 버리고, 더불어 일하며 정을 나누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경쟁의 문명은 공멸입니다. 상생의 문명만이 구원의 길임을 믿습니다."
책은 정 신부의 일생을 △전쟁과 가난(1940~1967년) △군부독재와 농민운동(1968~1979년) △농민사목과 생활공동체(1980~1986년) △민주주의로 가는 길(1987년) △사제가 농민이 되다(1988~1996년) △미리 쓴 유서(2006~2010년) △시인이 되어 죽다(2011~2012년) 등으로 나눠 정리했다. 부록으로 실린 정 신부의 글 '예수의 민중사목 :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농민사목'과 '생활공동체운동-인간ㆍ사회의 동시적 해방을 위하여 :〈밥도 먹고 말도 하고〉'는 그의 체취를 느끼게 해준다.
남정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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