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속 안동교구

영화 <신과 인간> 세 번째 씨네토크가 천주교 안동교구(교구장 권혁주 주교) 초청으로 지난 4월 20일 안동 가톨릭상지대학교 소피아관 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씨네토크에는 권혁주 주교와 안동교구 신자들, 그리고 상지대 학생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씨네토크에서 이야기손님으로 참석한 고진석 신부(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는 영화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간략한 설명에 덧붙여, 이 영화에서 배워야 할 두 가지 포인트로 폭력의 문제와 선과 악을 다루는 방법을 소개했다.

고 신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회 곳곳에, 심지어 학교에서도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며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 이번 씨네토크에는 권혁주 주교(안동교구장)가 참석해 신자들과 인사도 나누었다.

폭력에 맞서는 비폭력 저항

“폭력에 대항하는 복음적 방법은 간단하다.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을 내미는 것이다. 이런 비폭력 저항 방법을 설파한 사람이 마하트마 간디다. 이분은 ‘그리스도는 존경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존경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간디는 영국식민통치에 대항하면서 불복종, 비타협, 불복종을 제시했는데, 이게 복음정신과 꼭 일치한다. 영화에 나오는 수도자들도 마찬가지다.”

고진석 신부는 <신과 인간>에서 알제리의 아틀라스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무장반군의 요구에 타협하지도 복종하지 않았다고 소개하며, “그렇다고 그들과 폭력으로 대항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철저히 지는 삶, 실패자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볼 때, 누가 진정한 승리자인지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했다.

고 신부는 “폭력의 악순환 끊기 위해 폭력으로 대항하면 안 된다”면서 “악은 악을 낳고 폭력은 폭력을 낳지만, 평화는 생명을 낳고 평화는 사랑을 낳는다”는 복음정신을 현실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제주 강정마을의 상황을 예로 들었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정부와 해군에서는 상대방(중국)에서 폭력으로 위협하니 우리도 폭력으로 맞서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폭력은 예상만 될 뿐 실제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제에 무관심하고 암묵적인 동조자가 되고 있어 안타깝다. 가톨릭신자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

어느 수녀원에서는 강정에 해군기지가 빨리 건설되어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기도를 바쳤다고 하면서, 고진석 신부는 “복음을 따르는 수도자들이 이런 정신을 가졌다는 것이 경악스럽다. 상대가 칼을 들고 위협하면 제일 좋은 방법은 팔을 벌리고 상대를 맞아주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비폭력 평화 방식은 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데, 이 방법이 철저한 자기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서 많은 이들이 주저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선과 악의 문제와 관련해, 고진석 신부는 “폭력을 행하는 이는 분명 악의 집단”이라며 “항상 폭력으로 사람을 위협하고 진리를 흐리게 만드는 이들은, 거기에 자기 이권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상을 항상 선과 악으로 대립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신과 인간>에서도 크리스티앙 신부가 죽임을 당한 반군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순간 정부군 사령관이 ‘ 이 신부는 내 편이 아니다’라는 듯이 고개를 휙 돌리는 장면을 상기시켰다.

고 신부는 “선과 악은 언제나 뚜렷하게 구별되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루까 수사가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인간이 종교적 신념으로 악을 행할 때는 항상 신나고 즐겁게 악을 행한다’고 한 말을 소개했다. 고 신부는 “인간은 뭐가 악인지 선인지 모르면서도 분별없이 자신의 행동을 의롭다고 여긴다”며 “그래서 이 영화가 불편하지만 의미 있고 좋은 영화”라고 전했다.

▲ 고진석 신부는 이번 토크에서 폭력문제와 이에 맞서는 '작은 이들의 연대'가 가진 중요성을 전했다.

“들꽃은 햇볕을 찾아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씨네토크 진행자을 맡은 한상봉 편집국장(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은 고진석 신부의 말을 받아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반군들과 수도자들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이라며 “그 순간 누가 반군인지 누가 수도자인지 알 수 없다”며 적과 벗, 악과 선의 구분이 없이 모두가 하느님 안에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한 편집국장은 영화에 나오는 “들꽃은 햇볕을 찾아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하며, 그리스도교 신앙은 나무와 연관성이 있다며 이 영화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기에 좋다고 소개했다.

“예수는 십자나무에서 돌아가셨는데, 그 나무는 땅에 박혀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식물적 인간형인지 모른다. 동물은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서 배회하지만, 식물들은 한 자리에 자기중심을 지키고 앉아서 사시사철 내리는 비와 바람, 눈과 비를 맞으며 아래로 뿌리를 내린다. 거기서 자라나 세상에 그늘을 드리워준다.”

실제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민들은 프랑스식민지 시절부터 수도원에 기대 살았으며, 마을 주민들은 너나없이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아플 때도, 심지어 신발이 필요할 때도 수도원을 찾았다. 루까 수사처럼 연애상담까지 해준 이들이 수도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친밀한 이웃으로 살았던 수도자들은 다른 이웃들에게 신앙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적 신념이 달라도 형제로 자매로 살 수 있었다. 한 편집국장은 이를 두고 “이 수도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낯선 이들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으며, 이게 곧 그리스도교 신앙이 무슬림 세계 안에 현존하는 복음적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 <신과 인간> 가운데 한 장면...정부군의 헬기가 수도원 상공을 날아오르자, 수도자들이 어깨를 걸고 성가를 부르고 있다.

가난한 이들과 맺는 연대, 지금여기에 뿌리내리기

이에 고진석 신부는 수도자들이 행하는 ‘정주서원’에 대해 소개하면서, 마산 트라피스트 수녀원이 로마 총원의 허락을 받아 수정만 일대에 STX가 조선소를 건설하려는 시도를 막아낸 사실을 모범적 실례로 들었다. 조선소가 들어서면 가난한 지역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 사실상 도시빈민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는데, 수녀들이 막대한 보상금과 새수도원 건축의 제안도 뿌리치고 가난한 지역주민과 연대해 이 사업을 무산시켰다고 전했다. 그러나 실상 그 마을에는 신자도 별로 없고 공소 밖에 없었다. 신앙과 상관없이 수도자들이 나선 것이다.

고 신부는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에 방점을 찍으며, “수도자들은 기도만 하라고 세상이 요구한다. 정치는 정치인이 할 테니, 국민들은 돈이나 벌고 종교인은 기도라 하라는 태도다.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가 다 정치다. 이런 이분법이 나라를 망친다. 이런 악과 맞서려면 착한 이들의 연대, 양심적인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양심적으로 사회문제에 앞장서는 이들은 ‘항상 적다’면서, 바닷물도 4%의 소금기로 모든 생명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들 듯이, “촛불 한 자루면 온 세상의 어둠과 대적할 수 있다”며 ‘작은 이들의 연대’를 다시금 강조했다.

“지금 내가 처한 이 자리만 잘 지키고 뿌리내리고 있으면 된다. 그런데 기득권을 지니고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은 자꾸 근거 없는 두려움을 조장한다. 이를테면 영남에서 어느 당 안 뽑아주면 영남이 망한다고 말한다. 이 근거 없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중심을 잃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흔들리다가 결국 우리 삶이 꺾어질 것이다.”

고진석 신부는 임진왜란 당시 메시아처럼 나타난 이순신 장군은 조선팔도를 돌아다니며 왜적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진주와 해남 우수영 사이 300미터밖에 되지 않는 울돌목을 잘 지켜서 나라를 구했다고 전했다. 결국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현실에서 도망가지 않고 맞서는 게 ‘정주의 참뜻’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하느님나라를 지금여기에서 실현하는 것”이라며, 전통신학에서는 하느님나라를 죽어서 심판받고 가는 나라라고 가르치지만, “지금은 맞지 않는 해석”이라고 비판하고, “예수는 하느님나라가 저기도 없고 여기도 없다고, 그런 공간개념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곳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고 신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삶의 기쁨을 누릴 때, 이게 곧 하느님나라를 사는 것”이라며, “이걸 안다면 다른 데 갈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순간이 만족스럽고 고맙고, 계속 이런 기쁨이 샘솟는 곳이 곧 ‘하느님나라’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느님나라는 ‘식물성인 것’과 어울린다고 전했다.

“식물들은 한 자리에서 계속 광합성 하고 내부에서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동물들은 외부에서 에너지를 섭취해야 한다. 스스로 살아있는 기쁨을 느끼고 퍼 올릴 줄 알면 정주가 가능하다. 이 기쁨은 복음에서 오는 것이다. 복음이 기쁜 소식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먼저 예수의 비전을 알아야 한다. 왜 사람들이 이천년 전에 살았던 예수에게서 지금도 그분이 누렸던 기쁨을 공유하려고 하는지 알면 정주할 수 있다. 그걸 몰라서 조선팔도를 돌아다니고 성지순례도 가는 것이다. 로마에 가봐야 아무 것도 없다. 옛 사람들이 살던 집터와 성당 밖에 없다.”

고진석 신부는 마지막으로 “하느님나라는 지금이라도 즉시 열 수 있다”면서, 심지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하느님을 열었던 사람이 있다며 ‘막시밀리안 콜베’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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