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꽃의 아름다움은 소박한 데 있다고 한다. 산골 처녀처럼 청초하고 깨끗하며 단정한 이미지가 바로 우리의 아름다움이라고 하지만 더없이 깊은 산골에 살면서 누구보다도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아름다운 우리 꽃이 있는데, 바로 얼레지이다."(이유미. '한국의 야생화')
얼레지는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가재무릇'이라고도 합니다. 조금 높은 산 비옥한 땅에 자랍니다.
비늘줄기로 된 뿌리는 긴 타원형이며 땅속 깊이 박혀 있습니다. 잎은 꽃줄기 밑에 보통 2장씩 달려 옆으로 퍼집니다. 타원형 모양의 잎은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앞면에는 대부분 자색의 얼룩무늬가 있습니다. 이 얼룩무늬 때문에 얼레지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꽃줄기는 잎과 함께 나와 10~20cm로 곧게 서며, 3~4월 꽃줄기 끝에 붉은 보라색 꽃이 아래를 향해 핍니다. 6장의 꽃잎은 꽃이 피면서 끝이 서로 끝이 맞닿을 정도로 뒤로 젖혀지는데 젖혀져 꺾이기 시작하는 부분 안쪽에 톱니 같은 보라색 무늬가 있습니다. 얼레지의 영어 이름이 도그투스 바이올렛(Dog-tooth Violet)인 것은 바로 이 무늬 때문인 것 같습니다.
드물게 흰색 꽃도 있는데 따로 구분하여 흰얼레지라고 합니다.
봄에 돋는 잎은 나물로 하고, 비늘줄기는 주로 약용으로 쓰입니다.
모든 식물은 어미 곁에서 되도록 멀리 자손을 보내 같은 종 사이의 경쟁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별의별 방법을 다 씁니다. 물봉선처럼 열매의 껍질이 터지는 힘을 이용하기도 하고, 민들레처럼 씨에 솜털이 붙어 있어 바람에 날려가기도 하고, 도둑놈의갈고리처럼 씨에 달린 갈고리로 사람이나 짐승의 몸에 붙어 이동하기도 합니다.
얼레지는 좀 특별한 방법을 씁니다. 얼레지의 씨앗에는 개미가 좋아하는 당분 덩어리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얼레지가 씨방을 터뜨려 씨앗을 떨어뜨리면 개미가 그것을 자기 집으로 가져가 모아 둡니다. 그리고 얼레지의 씨앗에 붙어 있는 당분 덩어리만 떼어 먹고 씨앗은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얼레지의 씨앗들은 어미와 떨어진 곳에서 싹을 틔우고 또 다른 얼레지 군락을 만들게 됩니다. 결국 개미 덕분에 얼레지는 씨앗을 멀리 보내고 개미는 얼레지 덕분에 맛있는 당분을 얻습니다. 이런 것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생이라고 하지요.
언젠가 얼레지 군락을 보았을 때, "아!"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꽃이 한창일 때라 하나 하나가 다 고왔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무리지어 피어 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별세계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머물다 그곳을 떠나면서 몇 번이고 뒤돌아보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