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는 중국 원산의 낙엽 소교목으로 부처꽃과에 속합니다. 옛부터 주로 중부 지방 이남의 정원이나 정자 부근 혹은 산사(山寺)의 마당에 많이 심었습니다.
줄기는 곧추 서고 가지가 갈라집니다. 높이는 3~7m입니다. 나무껍질은 연한 홍갈색이며 얇은 조각이 떨어지면서 흰 무늬가 생깁니다. 잎은 마주나고, 타원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합니다. 잎 앞면은 윤이 나고 뒷면에는 잎맥을 따라 털이 나 있습니다.
꽃은 7~9월에 가지 끝에 모여 피어 원뿔 모양을 이룹니다. 이런 모양의 꽃차례를 원추꽃차례(圓錐花序)라고 합니다. 꽃은 진한 분홍색이 가장 흔하고 연한 보라색과 흰색도 있습니다. 꽃잎은 6장이며 주름이 많습니다. 수술은 30~40개로서 가장자리의 6개가 더 길고, 암술은 1개입니다. 열매는 삭과이며 둥글고, 익으면 6개로 갈라져 날개가 달린 씨가 나옵니다.
한방에서 꽃을 장염, 설사 등에 약재로 씁니다.
꽃피는 기간이 길어 배롱나무를 나무백일홍 혹은 목백일홍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꽃 하나 하나가 백일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꽃들이 쉬지 않고 피고 지기 때문에 같은 꽃이 오랫동안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국 이름은 자미화(紫微花)이며 줄기가 간지럼에 몸을 비꼬는 것에 비유하여 파양수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줄기를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하여 간지럼나무라고 하기도 하고, 겨울철 줄기에 사람의 손이 닿으면 가지 끝이 파르르 떤다고 하여 부끄럼나무라고도 합니다. 줄기와 가지가 매끄럽고 윤기가 나 맨살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원숭이도 미끄러지는 나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배롱나무의 진짜 아름다움은 한여름 꽃이 만개할 때이다. 7월이 되면 나무 아래쪽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하여 9월까지 100일간 붉은 빛을 발한다. 그래서 백일홍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배롱나무꽃은 작은 꽃송이가 한데 어울려 포도송이가 거꾸로 선 모양으로 피어나는데 탐스런 송이송이가 윤기나는 가지 위로 치솟듯 피어날 때 그 화사한 자태에 취하지 않을 인간이 없다.
본래 화려함에는 으레 번잡스러움이 뒤따르게 마련이건만 배롱나무의 화사함 속에는 오히려 청순하고 정숙한 분위기마저 풍기니 어느 격조 높은 문인화가인들 배롱나무꽃 같은 맑은 그림을 그려낸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나는 배롱나무꽃이 한여름 땡볕에 피어난다는 사실에 더욱 큰 매력을 느낀다. 춘삼월이 되면 대부분의 나무는 잎이 채 나기도 전에 앞을 다투어 꽃부터 피우며 갖은 맵시를 자랑하다가 5월이면 벌써 연둣빛 신록에 묻혀버리고 마는데, 배롱나무는 그 빛깔 있는 계절에는 미동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을 준비하고서는 세상이 꽃에 대한 감각을 잃어갈 즈음에 장장 석 달하고도 열흘을 피어 보이니 인간세상에서 대기만성하는 분들의 모습이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배롱나무를 볼 적이면 곱디곱게 늙은 비구니 스님의 잔잔한 미소 같은 청아한 기품을 느끼곤 한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 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모르게 배롱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뒤론 길 떠나면 어디서든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루하고 먼길을 갈 때면 으례 거거 서 있었고
지치도록 걸어오고도 한 고개를 더 넘어야 할 때
고갯마루에 꽃그늘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기도 하고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길로 접어 들면
건너편에서 말없이 진분홍 꽃숭어리를 떨구며
서 있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만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어
혼자 외딴섬을 찾아가던 날은
보아주는 이도 없는 곳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혼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꽃은 누구를 위해서 피우는 게 아니라는 말하듯
늘 다니던 길에 오래 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고
사랑하면 어디에 가 있어도
늘 거기 함께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도종환. '배롱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