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억새 꽃이 한창 피어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수염처럼 허연 억새의 꽃은 정확히 말하면 바람 따라 날려 보낼 씨앗에 털을 가득히 매달고 있는 열매이다. 억새는 여름이 갈 무렵 꽃대를 내보낸다. 가지 겨드랑이 사이로 붓처럼 뾰족하고 동그랗게 말린 꽃들이 삐죽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해서는 햇살이 좋은 어느 가을날, 술처럼 퍼진다. 이 술은 꽃잎도 없는 억새의 꽃들이 암술과 노란 꽃밥을 매달고 피어난 꽃차례이다. 이때까지 억새의 색깔은 자줏빛과 갈색과 금빛이 어우러진 조금은 진한 빛깔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한창 꽃을 피운 억새를 보고는 아직 꽃이 덜 피었다고 하고, 꽃이 지고 결실을 맺으면 비로소 억새 꽃이 피었다고들 한다. 가을이 한창일 때 억새는 꽃을, 아니 열매를 한껏 부풀려 낸다. 다채로운 가을꽃들과 화려한 단풍 빛에 눌려 그럭저럭 지내 오던 억새는 단풍마저 져 버린 늦가을, 홀로 남아 이 땅의 산과 들을 억새 천국으로 만든다. 가을 산을 바라보며 혹은 낙엽을 밟으며 산을 오르다 문득 산마루에 올라서면, 가을의 그 상큼한 산바람에 이리저리 굽이치는 은백색의 억새 물결이 보인다. 키를 넘어서는 그 억새 밭을 헤쳐 지나노라면 속세의 시름 따위는 잊기 마련이다."(이유미. '한국의 야생화')
억새는 산과 들에 아주 흔하게 자라는 벼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줄기는 1~2m 정도 자라며, 칼 모양의 잎은 억세고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어 손을 베일 수도 있습니다.
참억새, 물억새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저 억새 정도로만 알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억새와 갈대는 전혀 다릅니다. 억새는 산과 들에서 자라고 갈대는 물이 있는 곳에서 자랍니다. 이삭도 억새는 가지런하여 곱게 보이지만 갈대는 솜이 뭉쳐진 것 같이 보이며 곧 바람에 곧 날려가 버려 엉성한 모습이 되고 맙니다. 이삭의 색깔도 억새는 은백색이 돌지만 갈대는 갈색이 돕니다.
억새는 무리를 지어 있으면 더욱 아름답습니다. 꽃이삭을 단 억새들이 군락을 이루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억새는 바람에 흔들리면 더욱 아름답습니다. 바람이 억새를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물결치는 억새를 바라보노라면 늦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한 억새는 몹시 애잔해 보입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억새, 억새가 있어 가을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