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꽃과에 속하는 분꽃은 열대 아메리카 원산의 한해살이풀로 우리나라에서 오래 전부터 관상용으로 재배해온 귀화식물입니다. 어릴 적 고향집 마당에 피어 있던 추억의 꽃 중의 하나이지요.
줄기는 60~100cm 정도이고 가지가 많이 갈라집니다. 잎은 마주 나고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합니다.
꽃은 6~10월에 피는데 작은 나팔 모양이며 빨간색, 노란색, 흰색, 여러 색이 섞인 색 등으로 색깔이 다양합니다. 저녁밥을 지을 때쯤 피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시듭니다. 그래서 영어로 분꽃을 오후 네시쯤 핀다고 하여 '포어클락'(four-o'clock) 혹은 '애프터눈레이디'(afternoon lady)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원래 원산지에서는 여러해살이풀이어서 덩이로 되어 있는 뿌리를 겨울에 잘 간수하면 매년 튼튼한 포기에서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열매는 검게 익으며 주름이 많습니다. 이 콩알만한 씨앗 속에 하얀 분(粉)이 들어 있어 분꽃이라는 이름이 생겨났습니다.
"어렸을 때 생각이 납니다. 어렸을 때 우리 시골집 뒤란에는 꽃나무가 많았는데 백일홍이나 맨드라미처럼 줄창 피어있는 꽃이 있는가 하면 나팔꽃이나 분꽃처럼 아침에만 또는 저녁에만 피는 꽃도 있었습니다. 나팔꽃은 아침에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벌써 피어 있으니까 할 수 없지만, 저녁에 피는 분꽃은 그 피는 모습을 내 눈으로 한번 똑똑히 봐두고 싶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오므리고 있던 꽃봉오리가 한눈 파는 사이에 일제히 피어난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꽃들이 저희끼리 짜고 일부러 나 몰래 핀 것 같아서 얄밉기도 했습니다.
어른들한테 분꽃은 언제 어떻게 피냐고 물어보면 그 대답은 늘 같았습니다. '보리방아 찔 때 핀단다.' 분꽃은 여름에 피고 시골에서는 여름 내내 보리밥을 먹지요. 들일에서 남자들보다 한 걸음 먼저 집에 돌아온 엄마나 누이들은 부랴부랴 절구에다 겉보리를 찧어야 합니다. 그 동안에 핀다는 소린데 그럼 보리방아를 안 찧으면 분꽃이 안 필까? 그럴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내 눈으로 한번 똑똑히 분꽃이 피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갑자기 봉오리가 활짝 벌어질 줄 알았는데 지키고 앉아있으니까 왜 그렇게 안 벌어지는지요. 나는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서 약간 느슨해진 꽃봉오리를 손으로 펴려고 했습니다. 잘 안되더군요. 인내심이 부족한 나는 기다리다 지쳐서 잠깐 자리를 떴다 와 보니 분꽃은 용용 죽겠지 하는 얼굴로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글쎄 내가 억지로 펴려 했던 꽃봉오리만 피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지 뭡니까. 어른들한테 일렀더니 손독이 올랐다고 하더군요. 내 어린 손도 독이 되는데 어떤 인자한 힘이 꽃을 피웠을까?
그건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내 최초의 경이였습니다."
-박완서. '님이여, 그숲을 떠나지 마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