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은 아욱과에 속하는 중국 원산의 두해살이풀입니다. 꽃을 보기 위해 심는 원예식물이지만 길가나 빈터에 자생하기도 합니다. 한자로는 촉규화(蜀葵花)라고 합니다.
원줄기는 2.5m 정도로 곧게 자라며 털이 있습니다. 잎은 어긋나고 심장 모양이며, 가장자리가 5~7개로 갈라지고 톱니가 있습니다.
6~9월 잎겨드랑이에서 짧은 자루가 있는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차츰 위로 피어 올라가기 때문에 오랫동안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꽃은 접시같이 납작하며 지금은 많이 개량되어 붉은색, 분홍색, 흰색 등 색깔이 다양하고 꽃잎이 겹으로 된 것도 있습니다. 열매 역시 작지만 접시처럼 동글납작합니다.
시골 마을의 담장을 따라 늘어선 접시꽃은 키가 크고 꽃도 큰 편이어서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지만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여 시골 정취를 물씬 풍겨 줍니다.
접시꽃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을 담은 도종환의 시집 '접시꽃 당신'(1986년)으로 널리 알려진 꽃입니다. 이 시집의 표제시인 '접시꽃 당신'에는 아내에 대한 애절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삶의 무게, 이웃의 아픔을 헤아리는 성찰과 각성이 담겨 있습니다. 즉 아픔과 회한을 딛고 진지한 삶과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소중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 시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 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들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도종환. '접시꽃 당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