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어릴 적 부르던 "뒷동산에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이라는 동요처럼 뒷동산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정겨운 우리 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할미꽃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뒷동산이 과수원으로 변한다든지 나무가 우거진다든지 하여 할미꽃이 살 수 있는 곳이 많이 사라졌고, 게다가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일부러 때맞춰 찾아가지 않으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할미꽃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양지쪽 풀밭, 특히 무덤가에 잘 자랍니다. 전체가 흰털로 덮여 있고, 줄기는 높이 20~40cm 정도입니다. 잎은 뿌리에서 여러 장 나며 작은 잎 5장으로 이루어진 -새의 깃털을 닮은- 깃꼴겹잎입니다. 작은 잎은 다시 깊게 갈라집니다.
꽃은 4~5월 줄기 끝에서 1개씩 아래를 향해 피는데 종 모양이며 적자색입니다. 꽃잎은 없고, 겉에 털이 많은 꽃받침 조각 6장이 꽃잎처럼 보입니다. 수술은 많고 노란색이며, 암술도 많습니다. 총포(꽃차례 밑에 분은 작은 잎)는 꽃줄기를 감싸며, 3~4갈래로 갈라지고 긴털이 나 있습니다.
할미꽃은 흔히 줄기가 할머니의 등처럼 굽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꽃이 피고 진 다음 열매가 익으면 암술대가 하얀 깃털 같은 모습으로 바뀌는데 이것이 마치 하얗게 센 할머니의 머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자로 할미꽃을 백두옹(白頭翁)이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할미꽃은 특별히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것이므로 조선백두옹(영어로는 Korean Pulsatilla 혹은 Korean Pasque-flower)이라고 합니다.
할미꽃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집니다.
한 할머니가 두 손녀를 키우며 살았습니다. 큰손녀는 얼굴은 예뻤지만 마음씨가 고약하였고, 작은손녀는 얼굴은 빼어나지 않아도 마음씨가 고왔습니다. 두 손녀가 시집을 갔는데 할머니는 부잣집으로 시집간 큰손녀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큰손녀의 구박이 너무 심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가난한 집으로 시집간 작은손녀를 찾아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작은손녀에게 가는 길에 그만 기력이 다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마침 할머니가 걱정되어 찾아가던 작은손녀가 할머니를 발견하고 뒷동산 양지바른 곳에 고이 묻어드렸습니다. 이듬해 무덤가에서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할미꽃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도 할미꽃은 뒷동산 양지바른 무덤 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할미꽃의 꽃말은 '슬픔'과 '추억'이라고 합니다. 서양의 할미꽃 꽃말은 '당신은 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이라고 합니다.
손자 손녀
너무 많이 사랑하다
허리가 많이 굽은
우리 할머니
할머니 무덤가에
봄마다
한 송이 할미꽃 피어
온종일 연도를
바치고 있네
하늘 한 번 보지 않고
자줏빛 옷고름으로
눈물 닦으며
지울 수 없는 슬픔을
땅 깊이 묻으며
생전의 우리 할머니처럼
오래오래
혼자서 기도하고 싶어
혼자서 피었다
혼자서 사라지네
너무 많이 사랑해서
너무 많이 외로운
한숨 같은 할미꽃
-이해인 '할미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