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신자여러분, 찬미예수님! 오늘은 한국 순교성인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순교자들을 기리는 것은 그들이 받을 영광을 받지 못할까 걱정되어 영광을 더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써봐야 주님 말고 그들의 고난에 찬 일생을 어떻게 보상하고 위로해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수많은 신앙의 영웅들은 이미 받을 영광을 하늘에서 누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복음이 전파될 초기에는 세상 곳곳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이 탄생되었습니다. 이 땅에도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이래 수많은 신앙의 영웅들이 피로써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필설로 이루다 형용할 수 없는 영웅적인 신앙의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등진 채 무지와 폐쇄 속에 허덕이며 암흑 속을 헤매는 가여운 백성에게 목숨을 바쳐 구원의 여명을 비추었습니다. 스스로 진리의 씨앗을 받아들여 가꾸려고 피를 뿌리고 목숨을 바쳤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는 처참한 유혈극이 그칠 날이 없었고 더욱 처참하게 죽임으로써 공을 세우려는 공명가들에 의하여 산채로 생매장되기도 하였습니다. 깊은 밤 눈 덮인 산골짝을 어린 것을 업고 안고 앞세우고 뒤세우며 뛰어야 했고, 지쳐서 쓰러지는 자리가 잠자리가 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부둥켜안은 채 의식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휘광이의 칼만이 아니라 피해 다니다가 병들어 죽고 얼어 죽고 굶어 죽었습니다. 집은 고사하고 논밭을 날리고 가산을 흩뿌렸으며 부모형제처자가 생이별하는 참담함과 낭패감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이미 성인품에 올라 세계적 추앙을 받고 있는 103위 뿐 아니라 박상근(마티아) 순교자처럼 별로 알려지지 않은 순교자, 이름 모를 수많은 순교자, 순교자의 2배가 넘는 수많은 배교자 할 것 없이 그들은 주님 때문에 고뇌하고 갈등을 겪고 간난고초를 겪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한반도 춘하추동이 뚜렷한 이 땅의 사람들이었고 단군의 후손 백의의 민족이었습니다. 우리와 다르다면 자연과학과 물질문명의 편의와 풍요를 맛보지 못했고 100여 년 앞서서 태어나 살았다는 점뿐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갖가지 사회적 여건으로 갈등과 좌절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도 안 밖으로 갖가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者답게 그들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졌습니다.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선택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도 헌신했습니다. 영혼을 지닌 인간으로서 인간적 가치의 극치인 신의를 목숨 바쳐 지킨 사람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천지의 창조주를 주인으로 봉양하고 하느님께 끝까지 신뢰를 두며 우상과 거짓을 거부하겠다는 그 약속을 목숨으로 지킨 신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피와 정성은 지금도 이 땅과 우리 가슴에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던 때와 마찬가지로 진리를 등진 채 안락과 물질 속에 파묻혀 암흑 속을 헤매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갖가지 도전을 받고 있으며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세상은 현세적 이익과 편의만을 이기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정의와 사랑이 늘상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장마철 홍수처럼 밀려오는 물질문명의 대세 앞에 우리는 무력해지고 있습니다. 육체적이고 눈에 보이는 무상한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정신적이고 영원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은 위기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오늘 1독서의 지혜서에서는 의인들의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어떠한 역경과 고난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고 선언합니다. 이 모든 주장과 외침과 선언은 복음을 듣고 배우고 익혀서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말씀들입니다. 절대적 진리를 상대화시키고 자신만을 믿고 살아가려는 현대인들에게 바로 이 깨달음의 신앙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여기서 깨달음은 회개요 부활이며 구원의 시작입니다. 이 깨달음은 순교적 삶의 시작이요 영원한 삶의 시작입니다.
가톨릭상지대학교 정일 가브리엘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