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열 명의 나병환자 치유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신애리 공소가 생각납니다. 영덕성당에 있는 신애(信愛)리 공소는 “믿고 사랑하라.”라는 뜻을 가진 아름다운 공소입니다. 마을 앞에는 50개의 계곡 물이 모여서 강을 이루었다하여 “오십 천”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지난 60년대 초에 정부의 한센병 환자 격리 수용 방침에 따라 신애리가 만들어졌고 지금은 30세대만 남아 있습니다. 요즈음은 이분들을 나병환자라고 하지 않고 한센병 환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돼지와 닭을 사육하며 산 중턱에서 생계를 이어왔는데 사료 값 폭등과 축산가격 폭락으로 축산업을 포기하고 지금은 정부 지원금으로 노인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30명의 공소 신자들은 전동차를 타고 와서 매주 공소미사에 참여하고 서로서로 형제들처럼 집 안 일들을 걱정해주며 나누고 사랑하는 가운데 밝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애리 한센병 공동체에서 읽는 오늘의 복음말씀이 더 새롭게 읽혀집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어느 마을에서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자 “예수 스승님, 불쌍히 여기소서.”(루 17,13)하며 큰 소리로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가서 제관에게 몸을 보이시오.”(루 17,14)하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가는 도중에 몸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병이 나으면 사제들에게 몸을 보여 병이 나았다는 것을 확인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그들은 다시 마을에 들어갈 수 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가는 도중에 병이 ‘나았다’고 하지 않고 ‘깨끗해졌다’(정화)고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은 부정에서 벗어나 정결한 몸이 되어 그들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병이 나은 열 명 가운데 한 사람만 예수님에게 돌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사람은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에게 “일어나시오. 그대 믿음이 그대를 구원했습니다.”(루 17,19)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단순히 병만 고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드림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인 그리스도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나병의 치유 과정을 통하여 참된 주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은혜를 받고도 감사하지 않는 이들을 지적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루카17, 17-18) 왜 아홉 사람은 예수님에게 감사드리러 오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아마 아홉 사람은 치유의 벅찬 기쁨에 감사를 드리는 것을 잊었거나 바쁘게 가족들에게 달려갔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감사를 드리는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과 감사를 잊은 아홉 사람의 모습을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고 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바쁜 일상 속에 감사를 잊고 사는 사람입니까?
수년 전 미국의 미시간 호를 유람하던 배가 뒤집혀서 수많은 사람이 조난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배안에 수영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조하였는데 자그마치 23명의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 후 매스컴에 이 수영선수의 이름이 떠들썩하게 오르내렸습니다. 이제 노신사가 된 그 수영선수에게 기자가 찾아가서 예전의 일을 말하면서 “그 사건 이후 기억에 가장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제가 구했던 23명 가운데 아무도 저를 찾아와서 고맙다는 말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오늘 날 감사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감사의 기도와 감사의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뜨겁게 만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1테살 5,17,공동 번역)라고 하였고, 예수님은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루 17,17)하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감사의 생활로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영덕성당 공한영 고스마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