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의자의 기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 사람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들어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 말씀은 루카복음에만 나오는 예화이며 그 내용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직설적인 말씀으로 들립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실 때는 대개 불특정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선택하여 말씀하시는데 오늘 복음에서는 그 자리에서 듣고 있는 바리사이 사람과 세리를 특정 인물로 선택하여 말씀하십니다. 비유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갔는데 바리사이 사람은 보라는 듯이 꼿꼿이 서서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루카 18,11-12) 하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대화입니다. 하느님과 대화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자리어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거짓 없이 드러낼 때 기도하는 사람이 새로운 존재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될 때 우리의 존재는 조금씩 새롭게 바뀌어 갑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려 해서는 안 되며, 하느님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아오스딩 성인은 “기도는 하느님께서 모르시는 것을 우리가 가르쳐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는 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만큼 하느님이 원하시는 깊은 뜻을 알게 되고 그 뜻에 따라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어 갑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바리사이 사람은 하느님 앞에 자기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중심의 기도를 하고 남과 비교함으로 하느님과 진정한 만남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도는 자신의 독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습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14)하고 기도했습니다. 세리는 하느님 앞에서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고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한 후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루카 18,14)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리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거짓 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세리처럼 우리도 기도할 때 ‘바라봄’의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어떤 기도가 ‘바라봄’의 기도입니까?
“어떤 노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기도의 깊은 맛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가 잘 될까? 예수님은 내 음성을 듣고 계실까? 하고 본당 신부님께 고민을 털어놓자 노인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집에 가셔서 의자 하나를 준비해 놓으세요. 그 의자 위에 예수님이 앉아 계신다 생각하고 예수님께 얘기해 보세요.’ 노인은 곧 기도의 맛에 푹 빠졌습니다. 임종의 순간에도 노인의 손은 그 빈 의자에 얹어 있었습니다.”(차동엽 신부, 통하는 기도 136쪽) 형식적인 기도보다 진솔하게 하느님이 바로 내 앞에 현존하심을 믿고 기도할 때 그것이 바라봄의 기도입니다. 세리는 바라봄의 기도를 바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간절히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정성과 사랑을 모아서 하느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할 때 그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과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비로소 통하게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인내를 갖고 바쳐야 합니다. 성녀 모니카께서 16년을 기도하여 아들 아우구스티노를 회개시키지 않았습니까? 아들 때문에 늘 애태우며 기도하는 모니카를 보고 성 암브로시오 주교는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자녀는 잘못되는 법이 없답니다.”하고 위로하였습니다. 인내를 갖고 끈질기게 기도할 때 하느님은 꼭 들어주십니다. 오늘 화답송에서는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제1독서의 집회서 말씀은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올라간다.”(집회서 35,21)고 하였습니다. 기도할 때는 하느님의 현존을 믿고 간절히, 겸손한 마음으로 바쳐드려야 합니다. 아멘.
영덕성당 공한영 고스마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