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마태 3,3)
대림 제2주일인 오늘 우리는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며 대림초에 또 하나의 불을 밝히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를 듣습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마태 3,3)
거친 옷을 입고 광야에 서서 예언자 엘리야를 연상시키는 열정으로 소리치는 세례자 요한은 백성들의 관심을 임박한 메시아의 도래에 집중시킵니다. 그의 외침 속에는 메시아의 도래가 백성들의 준비 부족으로 지체되고 있다는 질책이 배어 있습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등장할 무렵 바리사이와 같은 열성적인 신앙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메시아의 시대를 앞당기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율법을 세분화 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는 과장된 측면도 많아 예수님으로부터 위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당시의 사회적 상황 때문에 율법의 규정을 일상적으로 어기며 살아가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의 심판자인 메시아의 도래가 그다지 희망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다가오는 하느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한 회개의 방법이 필요했으며, 세례자 요한의 세례운동은 그런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한 사람을 강물 속에 잠갔다가 꺼내는 세례자 요한의 세례예식은 교회의 세례예식과 마찬가지로 지나간 잘못을 깨끗이 씻어버리는 것을 상징합니다. 오늘날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마에 물을 붓는 것으로 형식이 축소되었지만, 침례교 같은 곳은 아직도 물속에 잠갔다가 꺼내는 형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그 자신이 직접 언급하고 있듯이 회개했다는 표시일 뿐입니다. 성령과 불로 상징되는 예수님의 세례만이 세례 받는 사람의 존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께서도 세례자 요한의 세례운동에 동참하셨기 때문에 요르단 강에서의 세례로부터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더 풍요롭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림시기로 새로운 전례주년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우리의 신앙여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단순히 세례를 베풀 수 있는 물이 많은 장소로 요르단 강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요르단 강은 그들의 정체성이 결정적으로 바뀌는 경계선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온 모세는 요르단 강에 이르러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강이 갖는 의미는 중요합니다. 백성들을 이끌고 요르단 강을 건넌 사람은 여호수아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바로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과 같은 이름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요르단 강을 건넘으로써 그들은 약속의 땅에 도착하게 되고 비로소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사람들을 요르단 강으로 부른 것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들이 카이사르의 백성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으로,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길을 제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전례주년을 맞아 신앙의 여정을 새롭게 출발하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주님이 동행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이 여정을 끝까지 갈 수 없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합시다. 하느님이 이끄시는 신앙의 여정은 자유를 요구합니다. 자유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데 있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나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인권주일을 제정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이 구체적인 삶 속에 스며들고, 모든 사람이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정상동성당 권용오 마티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