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마음을 배우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오늘 복음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이 말씀이 복수를 정당화 하는 말씀으로 오해된 데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탈출기 21장 24절-25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법적규정입니다. 개인적, 집단적인 복수가 아니라, 법적인 형벌에 관한 조항입니다. 즉 죄에 대한 공정한 처벌을 규정하는 조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정해야 할 사법제도는 흔히 강자들의 편에 서기 싶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규정은 그것에만 해당되는 죄를 범하였을 경우, 정확히 그것에 해당하는 벌만 주라는 것입니다. 곧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그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이 법의 관심사입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법을 폐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의 법적 정의가 성립되더라도, 그에 따라서 앙갚음 하지 말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앙갚음하지 말라는 것은 보복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네가 나에게 이러이러하게 골탕을 먹였으니 나도 그렇게 골탕 먹이겠다’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복수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다른 이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서로에게 좋고 또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을 늘 추구하십시오.”(1테살 5,16) 악을 그냥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자세를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악을 보고 도망치거나 또는 악과 타협하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증오를 사랑으로, 악을 선으로 대항하라는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내용대로 미움을 선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모욕을 기도로 갚으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경험으로 보아 원수를 사랑하기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무척 어렵습니다. 원수를 용서해 주는 것까지는 몰라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앙갚음을 해도 속이 시원치 않을 텐데, 하물며 병신처럼 고분고분 용서해 주고 사랑해 준다는 것은 도무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감언이설로 재산을 송두리째 삼켜 버린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나를 일생동안 신체장애자로 만든 사람이나, 출세를 결정적으로 방해한 사람을 과연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 중상모략으로 앞길을 가로 막는 사람, 이유 없이 저주하고, 흉보고, 악담하는 사람 등등 이런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란 정말 힘듭니다.
그런데도 왜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실까요? 원수마저도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솟아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 분”(마태 5,45), 그 주님의 한결같은 심정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모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게 창조된 목적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닮아야 할 하느님의 모습은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내리시는 그분의 자비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용서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할 때 하느님과 같이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생각해 볼 때 각자 겪어보았겠습니다만, 앞으로도 훨씬 더 당치도 않는 일들을 많이 당하게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억울한 일들에 부딪혀 더 심하게 상처를 입게 될 지도 모릅니다. 공연한 오해를 받아 쓸데없는 욕도 많이 듣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마다 억울함을 억울함으로 갚지 말고, 끝내 사랑으로 갚아주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용서하신 것 같이 용서하는 것을 배우고, 하느님께서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는 것을 배웁시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
서문동 본당 조상래 다미아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