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에도 끝이 있듯이, 고생길에도 끝이 있단다."
“장마에도 끝이 있듯이, 고생길에도 끝이 있단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글귀입니다. 가정을 혼자 지탱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 있었던 한 여고 1학년 학생이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수련회에 오신 추기경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며 노트 위에 싸인을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아빠는 집을 나갔고요, 엄마는 병으로 누워있어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 뒷바라지를 하고 있지만…, 하루 하루가 정말 힘들어요. 추기경님이 저를 위해 좋은 말씀 하나만 적어주세요.” 이때 추기경님께서 적어주신 글귀가 바로 그것이라고 합니다. 그 학생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계속 내리는 장맛비로 텐트 속에서 자다가 새어들어 오는 빗물 때문에 서서 밤을 새우곤 했었는데 그때 오신 추기경님께서 비에 젖고 찢어진 메모지에 적어주신 글입니다. 항상 마음에 간직했던 글귀였습니다.” 그 글귀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오는 여정에 늘 힘이 되고, 희망이 되어 주었다는 의미였습니다. 희망은 삶을 일어서게 해 주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이즈르엘 평야에 홀로 우뚝 솟은 타볼산이 그 산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산에 오르신 예수님께서는 평상시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예수님의 모습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은 놀라움에 젖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러한 영광스러운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을까요? 그 속에는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대 레오 교황님은 심오한 두 가지 희망을 주는 의미가 있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제자들을 향한 의미입니다. “주님이 당신의 모습을 변모시키신 것은 제자들의 마음에서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초래될 실망감을 없애 주고, 주님께 숨겨진 위엄의 탁월성을 드러냄으로써 자원하신 수난의 치욕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신앙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곧 다가올 주님 십자가의 길이 제자들에게 감당하기 무척 힘든 길일 수 있음을 예견하시고 그들이 주님의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기억하며 믿음을 잃지 않고 굳건하게 지켜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 전체를 향한 의미입니다. “주님께서는 또 당신의 모습을 변모시키심으로 성교회에 희망의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즉, 이 변모로 인해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모의 형태를 깨닫게 되고, 지체들은 이미 그 머리에 비추인 영광의 한몫을 미래에 누릴 수 있다는 약속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곧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은 그분의 지체인 우리들이 이 세상을 떠나 누리게 될 희망을 미리 맛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삶에 다가오는 시련의 시간도 그 희망을 간직하며 이겨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타볼산의 영광스러운 변모 의미를 가지고 성경을 보니 복음서의 예수님은 늘 희망을 주시는 분으로 보여 집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다니시는 여정에 병고의 고통을 안고 당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삶의 새로운 희망을 주셨고, 물에 빠진 베드로에게 손을 내 밀어 그를 들어 올려 주셨으며 마침내는 당신 부활로써 죽음을 넘어 우리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주신 분이십니다. 사순절은 이 부활의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는 ‘선교의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선교는 이 믿음의 희망을 이웃에게 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희망을 간직하며 살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그 희망이 담겨진 “믿음은 마치 초 하나가 다른 초에서 그 불을 옮겨 받듯이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통해서 전달됩니다.”(「신앙의 빛」37항) 특별히 이 사순시기를 보내며 신앙의 희망의 촛불을 이웃과 만나 전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또한 이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우리도 희망을 주시는 주님을 닮아 서로서로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됩시다. 희망을 담아 주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마음과 글귀의 의미를 우리도 어려운 형제들안에 사랑으로 나누어 봅시다. “장마에도 끝이 있듯이, 고생길에도 끝이 있단다.”
휴천동 본당 안상기 미카엘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