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서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사순 제4주일로,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사순시기가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의 시기임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여호수아 5장 9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의 40년을 마감하고 이제 새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오늘 1독서 앞부분 7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길갈에서 여호수아가 할례를 베푸는 장면이 나오는데 할례를 마친 백성들은 그 상처가 아물때까지 길갈에 머뭅니다. 이어서 하느님은 “내가 오늘 너희에게서 이집트의 수치를 치워버렸다.”(여호 5,9)라고 선언합니다. 즉 이집트에서의 수치와 노예로 지내면서 겪을 수 밖에 없던 온갖 치욕을 없애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난날의 수모와 그로 인해서 생겨난 악습, 몸에 밴 습관들을 과감하게 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할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오직 하느님의 말씀에만 의지하겠다는 단호함과 자신을 베어내는 아픔이 필요합니다. 할례는 바로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며 살갗을 떼내는 고통스런 단절을 의미합니다. “파스카 축제 다음날 그 땅의 소출을 먹었다. 바로 그날에 누룩 없는 빵과 볶은 밀을 먹은 것이다.”(여호 5,11)라고 성서는 전합니다. 할례는 내 살을 베어내는 아픔을 통해 과거와의 단절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기쁨을 맞봅니다. 그래서 그들은 파스카 축제를 벌이고 처음으로 누룩없는 빵과 볶은 밀을 먹습니다.(여호 5,11 참조)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 15장의 내용으로 아버지와 두 아들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작은 아들의 유산 요구입니다.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루카 5,11)라고 합니다. 이런 작은 아들의 요구는 아버지에 대한 공격이자 모욕입니다. 아버지가 멀쩡히 살아있는데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그의 생명을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고대인의 삶에서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아버지더러 죽으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실제로 오늘 작은 아들이 요구하는 ‘재산’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작은 아들의 요구에 아버지는 가산을 나누어 줍니다. 여기서 ‘가산’이라는 단어 또한 그리스어로 ‘생명’을 뜻합니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의 요구에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줍니다. 실은 오늘 복음이 돌아온 작은 아들의 비유로 알고 있지만, 이러한 단어적 의미로 볼 때 끝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부모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작은 아들은 자신의 몫을 챙겨 집을 떠납니다. 그는 방탕한 생활로 돈을 모두 날리고 맙니다. 그제야 정신이 든 작은 아들은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이러한 아들을 용서합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큰 아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여기서 형과 동생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면 사랑이 아닌 것 바로 죄를 겪어 봐야 죄가 없는 상태가 얼마나 편하고 좋은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상처를 입어봐야 상대방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은 아들은 죄의 깊은 수렁 속에서 아버지의 용서로 죄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체험했습니다. 결과는 나와 있지 않지만, 작은 아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자비를 체험했을 것이고, 이 체험은 타인에 대한 용서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라고 말합니다. 죄의 수렁속에 살아가던 인간이 세례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세례를 통해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체험한 우리는 작은 아들과 같이 용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끝으로 고린토1서 15장 3절의 내용을 묵상해 봅시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죽었습니다.”
휴천동 본당 최장원 라우렌시오 신부
